[행복 클리닉] 주식에 중독된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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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세 자녀를 둔 결혼한지 13년된 주부입니다.

신혼 때부터 남편과의 성격 차이는 분명히 있었죠. 늘 편하게만 살려는 그와,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는 제 성격이 갈등을 빚었습니다.

그러다 차츰 서로 적응하게 됐습니다. 명문대 출신 남편은 좋은 직장에 다녀 경제적으로도 안정됐지요.

그러나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남편은 3년 전 상의도 없이 회사를 그만뒀어요. 주식을 하기 위해서랍니다. 말려도 보고 사정도 해보고 겁도 주고 안 해본 것이 없어요. 그는 돈이 없어도 증권회사 객장에 나가 살았지요.

백수 생활 1년이 됐을 때 제가 이혼을 요구하자 남편은 아이들과 모든 걸 다 양보하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더군요. 아이는 포기해도 주식은 포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차마 이혼은 할 수 없기에 제가 양보하고 돈을 주기로 했죠. 그는 원금의 20%를 잃으면 주식을 안하고 직장에 다니겠다고 각서를 쓰더군요.

두달 만에 그것 또한 깡통이 됐습니다. 그래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그는 늘 이랬죠. 결혼해서 지금까지 약속을 지킨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생활비도 바닥나고 우리 부부의 갈등과 말다툼은 더 심해졌습니다. 몇 달을 그렇게 생활하다 남편은 다른 직장을 구했어요.

그러나 지난해 가을 회사를 또 그만뒀습니다. 주식에 정신을 팔고 있는데 일이 손에 잡히겠습니까. 지금도 그는 증권회사 객장에서 살고 있어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객장에 나갔습니다.

주말엔 경마장으로 향하죠. 제가 그에게 준 돈만 수천만원입니다.

최근에는 돈을 주지 않았더니 얼마 전 시누이에게서 돈을 빌렸다는군요.

이젠 희망이 안 보입니다. 버스비가 없어도 걸어가면 걸어갔지, 누구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지는 못할 사람이었거든요.

생활비가 없다고 하자 남편은 돈좀 아껴쓰라고 하네요.

예전에는 돈을 너무 못 벌어다 줘 미안하다던 사람이었는데 변해도 너무 변했어요.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하기에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이젠 남편에 대한 신뢰가 없어요. 믿음없이 산다는 게 너무 힘듭니다. 남편과 얘기를 해보려 하면 집을 나가버립니다.

또다시 직장을 그만뒀다는 얘기를 친정 식구들에겐 차마 하지도 못했어요. 시댁에서도 처음 회사를 그만둘 때는 정신과 치료를 하자고 하더니 이제는 제가 잘못해서 그렇다는군요. 혼자만 끙끙 앓다 보니 제 성격이 불같아지고 다혈질로 변했어요. 남편 문제 때문에 신경쓰다 보니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소홀하게 됩니다.

남편은 워낙 내성적이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인간관계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죠. 주식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니 잘 맞지요. 그렇지만 진득하지 못해 하루에도 수십번씩 팔고 사며 늘 돈을 잃기만 합니다.

저라도 생활비를 벌면 좋으련만. 세 아이를 혼자 키우며 13년을 보낸 데다 사고 후유증으로 허리를 잘 못써요.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나몰라라 하는 남편을 보면 더 화가 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일확천금만 꿈꾸고 있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경기도 고양에서 박순영(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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