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작가>|귀가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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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첫눈 내린 다음날 신문을 보니 통금직전의 거리에 눈을 맞으며 차를 잡으려고 몰려있는 「술꾼」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기사를 읽어보면 길바닥이 미끄러워 자동차들이 일찍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차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여관으로 몰려가 서울시내 여관이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적혀있다.
추운데 일찍 일찍 들어가지 못하고 무슨 짓들이 람 하고 주부 치고 한마디씩 욕을 안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날 일찍 집에 들어갔던 남편들일지라도『아 눈이 오는데 당연히 한잔 마셨어야 하고 말고』라고 중얼거리는 이가 많았을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최근후의 술이란 일종의 버릇이다. 그 버릇은 날씨가 쌀쌀해짐에 따라 더욱 찾아 지게 마련이다.
하루의 근무가 끝난다. 늘어지게 기지개와 하품을 한번하고, 그 다음은 휭 한 허탈감속에서『자 어쩐다? 집에 가야지, 아 암, 가야하고 맡고.』작정은 일단 이렇게 하지만 스스로도 어쩐지 실감이 잘 안 간다. 맨숭맨숭한 기분으로「버스」정류장까지 혼자 나서기는 여 엉 싫다. 춥고, 기분이 설렁해진다.
설령「버스」정류장까지는 갔다고 치자. 만원「버스」또 만원「버스」. 선뜻 올라탈 생각이 내키지 않는다. 도대체 이 맨숭맨숭한 기분이 싫다. 그냥 집에 가더라도 신경질만 날 것 같다.
출출해 온다. 이런 때 누구를 만나면 영락없이 술집이요, 술집에 가서 몇 잔 들어가면 대번에 얼굴은 벌겋게 핏기가 돌고, 하루종일 억눌렸던 응어리 하나가 와장창 스럽게 훌러덩 뽑아지는 것이다. 그 가볍고도 상쾌한 느낌이라니….
술 먹는 사람끼리는 근무처에서부터 벌써 서로 전기가 통한다. 최근 삼십분전쯤 되면 서로 눈길을 맞부딪치고 실실 웃는 것이다.
『오늘 저녁은 어쩌지 좋은 수가 없을까.』
『어쩐다?』
『못써요. 빨리빨리 집에 들어가야지, 처자식 옆이 뭐니 뭐니해도 최고니까.』
이런 식으로 실실 지껄이다 서로의 눈길이 벌써 부딪치는 것이다. 뭔지 기분이 분명치 않게 거슴츠레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건 강한 전염성이 있다.
집에 기다리는 아내, 저녁밥, 따끈따끈한 된장찌개,『아빠 아』하고 달려나오는 자식새끼, 그 자식새끼를 덥석 가슴에 안는 맛, 그런 맛 저런 맛 다 좋지만 역시 술 아니면 뽑아질 수 없는 그 응어리 하나는 그냥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술 버릇이 버릇이라는 얘기다.
버릇치고는 매우 집요하고 끈질긴 버릇이다. 분명치는 않고 막연한 버릇이지만 뿌리는 어딘가 깊다. 일종의 병이라면 병일 것이다. 한번 맛들이면 쉽게 치유될 수 없는 병이다.
남편들의 저녁 술 마시는 사정은 대체로 여사여사 하니 그에 대한 처방과 대책은 주부 각자가 알아서 꾸밀 일이다. 잦아 들어가는 찌개가 끓듯 같이 속만 끓일게 아니라 한번 허심탄회하게 남편과 함께 대책을 의논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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