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파키스탄」에 정치 저기압|들먹이는 야당…그 정국 불안에 인과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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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일이라는 「대천재」로 1백만명의 인명을 잃어버린 「파키스탄」이 이번에는 「정치적 재난」의 열풍에 휩싸이고 있다. 오는 12월 7일로 예정된 총선이 해일 뒷수습을 이유로 재연기 될 기미를 보이자 야당에서 들고일어난 때문.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해일의 후유증」만으로 넘길 수는 없을 것 같다. 「파키스탄」의 「카라치」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최근 귀국한 김무창씨와 외신을 통한 그 「역사적 인과 관계」를 알아본다.
「야하·칸」 대통령의 총선 연기 기미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은 「아와미」 연맹의 지도자 「세이크·무지비르·라흐만」. 그는 총선이 연기될 경우 「또 다시 1백만명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벵골」 민족의 독립(동 「파키스탄」 독립의 의미)을 위해 봉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는 12월 7일이 총선 날짜로 지정된 것은 지난 1월. 이것은 69년 3월 당시 육참총장이던 「야햐·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약속한 「70년 1월 실시」가 이미 『한차례 연기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문제는 「야햐·칸」의 『번의』보다도 「라흐만」이 이끄는 「아와미」 연맹의 막강한 『실력』에 있다.
69년초 「아유브·칸」 전 대통령의 「천년 아성』을 무너뜨렸던 민중 봉기도 그와 「알리·부토」(현 좌파 인민당 당수)가 주도했으며 「아와미」 연맹의 조직은 거의 『행정 조직과 비견할 만큼』 완벽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 「파키스탄」에서 그의 영향력은 「야하·칸」보다 훨씬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와미」 연맹이 특히 「벵골」민족(동 「파키스탄」 지방 주민) 사이에 깊이 뿌리박은 것은 파키스탄 특유의 인문·지리적 조건 때문. 즉1천6백㎞나 떨어져 있는 동·서 「파키스탄」은 주민들의 대부분이 회교도라는 사실 외에는 거의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는 『인위적 단일 국가』인 것이다.
서 「파키스탄」의 「우두루」족은 「우두루」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동 「파키스탄」의 「벵골」족은 「벵골」어를 국어로 삼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민속과 습관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다.
이러한 이질성 외에 동 「파키스탄」의 주민들은 일종의 피해자 의식을 갖고 있다. 인구도 더 많고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황마도 「벵골」족들의 손으로 생산하지만 정권은 언제나 서 「파키스탄」 「우두루」족의 「엘리트」가 차지해 왔다. 「아와미」 연맹이 동 「파키스탄」의 『울분 창구』로 등장한 것은 이와 같은 배경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라흐만」이 총선 연기의 반대 이유를 『헌정 질서의 회복』과 같은 정치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해일 뒷수습의 무능』에서 찾은 것도「벵골」족의 감정에 편승하려는 하나의 『전술적 기교』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총선이 연기될 경우 「아유브·칸」을 몰아낼 때처럼 또 다시 민중 폭동을 일으킬 것임을 명백히 한 것이다.
「야햐·칸」 현 대통령이 「아유브·칸」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다는 사실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다. 「아유브·칸」의 경우 집권 9개월만에 수출고와 외화 보유고를 두배 이상으로 올렸고 「기본적 민주주의」(59년 6월)를 바탕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었다. 그러나 「야햐·칸」의 집권 2년은 아무런 정치적 장식도 없는 『공백의 기간』으로 평가되고 있다.
「라흐만」의 강경한 태도에는 이러한 국내 정치의 상황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현재 총선을 위해 활발한 준비를 하고 있는 4∼5개의 「강력 야당」이 「아와미」 연맹과 행동을 같이 하면 58년 「아유브·칸」의 무혈 「쿠데타」이래 12년간 계속되었던 『사실상의 군정』은 막을 내릴 것 같기도 하다.
「아와미」 연맹과 함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정당은 서 「파키스탄」을 기반으로 한 「자마티·이슬라미」(이슬람 당). 그밖에 「아유브·칸」하야 때 『무산자의 대변인』으로 자처하고 나섰던 「알리·부토」 전 외상의 「파키스탄」 인민당이 있다.
그러나 「부토」 「바샤니」(전국 「아와미」당 당수) 등 이른바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정치인들도 모두 『대지주』들로서 총선이 실시된다 해도 가까운 시일 안에 이들이 정권을 잡거나 사회주의 제도를 받아들이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갈다.
47년 독립이래 처음 실시되는 이번 직접선거는 「야하·칸」이 「내란 상태」를 각오하지 않는 한 연기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와미」 연맹이나 「이슬람」당의 어느쪽이 집권하든 군부가 지키고 있던 『우익 성향』은 크게 상처 입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정가에서는 그 첫번째 징후가 「시토」 및 「센토」에서의 탈퇴로 나타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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