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정리법과 부실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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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보도에 의하면 부실기업의 속출과 더불어 근자 법원에 회사정리절차를 밟고있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일부기업에서는 회사정리법을 악용하여 채무변제를 면탈하려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회사정리법의 입법목적은 『회사가 재정적금지로 파정에 직면하였으나 갱생의 가망이 있는 주식회사에 관하여 채권자·주주기타 이해관계인의 이해를 조정하며 그 사업의 정리 재건을 도모』하자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단 동법에 따라서 정리절차를 개시하면 정리절차개시전의 원인으로 생긴 재산상의 청구권은 정리채권으로 구속되어 그 변제를 금지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채무변제를 금지하는 이유는 회사의 재정적 압박을 완화시켜 회사의 재건을 돕자는데 있는 것이라 하겠으며, 동법의 취지상 당연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주들이 이를 악용하여 채무이행을 면탈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근자 그 악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나, 차제에 우리는 동법을 채무자가 악용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횡포문제도 아울러 신중히 고려해야 할 줄로 안다.
우선 회사가 재정적 궁핍으로 파정의 위기에 몰입된 이유가 고의적일 경우에 한해서 동법 악용론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채무는 회사명의로 지되, 그 자금을 개인명의로 부동산에 투자를 했다든지, 또는 유용했다든지 함으로써 회사를 고의적으로 부실화시키고 주식회사법과 회사정리법을 악용하여 채무를 면탈하려 하는 경우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현행법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채권자의 무식과 불찰이 문제될 뿐임을 관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즉 이 나라의 주식회사가 실질적으로 개인회사라는 점은 천하공지의 사실이며, 때문에 채권자가 자연인을 연대보증인으로 하여 대차관계를 성립시켰다면, 회사정리법의 악용운운은 생기지 않았을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금전대차관계가 성립되기 전에 채권자가 채무자의 신용과 인품을 고려하지 않고서 재산을 임차해 준 것은 오로지 채권자의 불찰이므로 그 책임을 회사정리법의 미비에 돌리기는 힘들다 할 것이다. 은행의 경우든, 사채업자의 경우든, 부실융자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채권자, 특히 사채권자가 회사정리법 때문에 사채회수를 못하는 경우라면 국가적인 견지에서는 별로 나쁠 것이 없다할 것이다. 특히 회사의 부실화가 사채이자의 중압에 기인되는 경우라면, 당사자간의 합의로 사채권자가 회사를 인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 하겠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채 때문에 도산 위기에 봉착한 기업에 구제금융을 하는 것은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무익한 것이라 하겠으며, 한때 그런 움직임을 당국이 보인 것부터가 실책이라 할 수 있다.
고리사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은 조금도 없는 것이며, 오히려 회사의 도산을 촉진시킴으로써 사채권자가 회사를 인수하도록 하는 것이 사채자금의 산업자금화라는 정책목표와도 부합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회사정리절차를 개시한 기업이나 그 채권자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따로 보호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구제금융으로 채권채무자를 도와주는 것은 경제적 낭비에 가깝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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