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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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는 대중 목욕 값을 연내에 34% 인상해 줄 것을 결정하고, 그 선행 조건으로 연말까지 연료를 유류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서울시가 업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며, 유류 전환이란 선행 조건을 내건 업자 측에 대한 허울 좋은 양보라고 생각된다.
서울 시내 목욕탕 업자들은 지난 구정과 추석 때에도 일방적으로 요금을 올려 받으려다 서울시가 위생 감찰 등 강경 조치를 하였기에 인상을 철회했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서울시가 강압 수단을 더 계속할 수 없어 업자들에 선행 조건 이행이란 핑계를 구실 삼아 요금 인상을 허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시는 그 동안 버스 요금·택시 요금 등 시민 생활과 직결되는 민원 공공요금율 인상해줄 때마다 항상 선행 조건의 이행을 내세웠다. 버스나 택시의 경우, 서비스 개선·시설 보완 등을 선행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업자들은 인상의 선행 조건은 무시하고 요금만 인상해 왔던 것이 관례였다. 또 서울시는 일단 민영 협정 요금을 인상해 줄 때에는 선행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발표해 왔으나 사실에 있어, 그 조건들이 이행되지 않은 일은 너무도 허다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들 선행 조건은 항상 당국이 업자 측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간 처사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대중 목욕 요금 외 인상의 선행 조건으로 내세운 유류대체 운운이란 실상 시민으로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이라 할 것이며 기술적으로도 그것이 공약이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것은 아마도 상공부가 마련한 70년도 월동 연료 대책에 따라 대도시의 유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월동 석탄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나머지의 조치일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상공부의 시책에 따라 목욕탕의 유류 전환을 권장하며, 이것이 이행되는 경우, 요금을 인상할 것이라고 하나, 대소 욕탕 업자들이 이미 월동 연탄을 거의 준비한 이제 와서, 더군다나 상당한 신규 시설 자금이 드는 유류대체를 선뜻 이행할 것인지는 참으로 두고 볼 만한 일이라 할 것이다.
계절적으로도 성수기인 동절에 와서 목욕 값 인상을 획책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욕탕 업자들은 상수도 값이 올라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하나, 시 당국에서도 대중탕을 위한 수도 요금에는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수도 요금의 인상을 구실로 한꺼번에 몇 10%씩 요금 인상을 주장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동안에 연료비도 약간 올랐고, 인건비도 올랐을 것이나 34%의 대폭 인상을 정상화할 원가 계산을 우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
한국의 중류층 이하의 가정에는 비록 욕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절에나 사용하고, 추동절에는 대중탕을 찾지 않을 수 없는데 현행 60원 선에서 80원으로 올린다면 54%나 인상하게되어 연말 물가에도 심한 자극을 주게 될 것이 우려된다. 연말 물가에 못지 않게 목욕 값 인상으로 입욕 회수가 줄어 국민 보건에도 우려할만한 악영향을 주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한국 사람의 목욕 횟수는 일반적으로 아주 적은 것이 가리울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목욕 값이 인상되어 그 횟수가 더욱 적어져 1개월에 한번씩이나 목욕을 하게 된다면 시민들의 겨울철 신체 보건이나 위생상에도 많은 지장을 줄 것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인국 일본의 경우, 대중탕 값은 32원으로 한화로는 25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한번 비교해 보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서울시가 목욕 값을 만 부득이 올려 주는 경우에도 종로구와 중구 등 도심지의 시설이 좋은 욕탕만 올려야 할 것이요, 시설이 나쁘거나 지하수를 사용하는 변두리 목욕탕 값은 차등을 두도록 조치해 주길 바란다. 서울시는 목욕탕에도 더욱 세분화한 등급 지정을 하여 요금에 차를 둘 것이요, 시설 개선을 요금 인상의 선행 조건으로 내세우는 악습은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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