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준비 안 된 원격진료 … 간판만 창조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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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환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받는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법안이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된다. 익명을 원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15일 “보건복지부가 원격진료를 확대하는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정부가 직접 법안을 낼 것인지, 이 법안의 취지에 공감하는 의원이 발의(의원입법)하게 될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격진료는 2002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의료인끼리 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이는 의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를 진료할 경우 환자 곁에 의사나 간호사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2010년과 지난해 의료취약 지역 거주자(446만 명 추정)에 한해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려 했지만 국회 반대(자동폐기)로 무산됐다. 한풀 꺾인 것 같았던 원격진료는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원격진료를 창조경제의 대표 사례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물론 기획재정부·미래창조과학부 등이 지난 4월 업무보고에서 원격진료 추진 계획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28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그런 것(원격진료)은 반드시 가야 되는 길이기 때문에 좋은 방법, 실행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주시면 실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원료진료가 도입된다고 해도 당장은 창조경제의 대표사례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겠지만 현재 수준의 원격진료는 단순하다. 혈압이나 혈당 등 생체신호를 모니터링 하는 수준이다. 당분간은 만성질환 관리 이상의 원격진료를 기대하기 어렵다. 산간오지 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 제한적으로만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추진하는 정부 부처 간에도 미묘한 입장차가 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원격진료를 통해 관련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등 떠밀려 가는 모양새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20~30년 미래를 생각해 보면 큰 틀에서는 원격진료를 추진하는 게 맞다”면서도 “현재로선 만성질환 관리 수준이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는 기재부나 산업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협회는 벌써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송형곤 의협 대변인은 “원격진료가 확산하면 큰 병원으로 환자가 몰려 동네의원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며 “작은 병원이 문을 닫아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면 진료비용이 늘고 건보재정이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희대 정기택(의료경영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만성질환자가 많은데, 힘들게 병원 가서 혈당 체크 한 번 하거나 호르몬 체크를 하는 게 고작”이라며 “원격진료는 병원에 자주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은 의료비도 줄이고 의사도 행복해지고, 제대로 진료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주영·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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