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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의 심의자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회는 27일 총 규모 5천 2백 82억원의 새해예산에 대한 예비심사에 착수했다 국회 국방·농림 두 위원회는 이날 정부측으로부터 예산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듣고 정책질의를 벌였는데, 나머지 상임위도 28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심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예 산안을 법정기한인 12월 1일까지 끝낸다는 원칙아래 11월 20일까지 예심을 끝마쳐, 바로 예결위 종합심사에 들어갈 계획이며, 그 예산안은 무수정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대해 신민당은 예산안 처리 전에 선거법 협상을 끝내겠다는 방침이며, 약 3백억원의 삭감투쟁을 벌일 방침으로 있어 심의일정에 차질을 가져올 우려도 없지 않다.
예산안의 심의 통과는 국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인데 제7대 국회로서의 마지막 예산안을 심의하는데 있어 우리는 국회가 성실히 그 임무를 다 해줄 것을 요망하면서 종전의 경험에 비추어 다음 세 가지 사항에 관해 특히 주의를 환기하고 싶다.
첫째, 국회 예산안심의가 형식적인 것으로 타해, 입법부가 행정부에서 제출한 예산안을 덮어놓고 승인해주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산안 심의의 중점을 상임위별로 실시하는 예심에다 두고, 예결위는 종합심사만을 하게 하도록 한 현행제도는 각 상임위가 그 소관 행정부문에 대한 예산을 전문적 입장에서 충분히 심사케 하려는 데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능률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심을 맡은 상임위가 여야간의 정치싸움이나 흥정 때문에 시간만 낭비하고 엄격한 예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런 예산안을 예결위 및 국회의 본회의에 넘겨, 간단히 통과시키고 만다면 국회 예산심의권은 그 때문에 도리어 유명무실한 것이 되기 쉽다. 이런 폐단을 자아내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 20여일 간 국회상임위는 백사를 제외하고 예산안의 예비적 심사에 전력을 집중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싶다.
둘째, 예산안을 심의 통과하는데 여야가 정치적 흥정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해마다 예산안을 심의할 때가 되면, 소수당 측은 자기네들이 원하는 다른 법안을 기필코 통과시키고자 다수당을 물고 늘어져, 이로 말미암아 정치적 혼란이 벌어져 정작 예산안 심의는 유야무야로 되어버리곤 했었다.
올해 역시 그 예외가 아니어서 신민당은 예산안 처리 전에 선거법협상을 매듭 짓겠다는 방침을 굳히고 있는데, 선거법 협상이 잘 되지 아니하면 양당간에 격돌이 벌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야당이 예산안 심의를 사실상 거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신민당의 입장에서는 야당의 존립·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선거법 개정은 예산안 처리 전에 반드시 완결 짓겠다는 심정을 갖게 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라고 이해치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선거를 치르나 마나, 국회 있으나 마나』라는 식의 절망적인 좌절감에 사로잡혀 야당이 예산안 심의를 소홀히 하거나, 혹은 이를 전적으로 「보이코트」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 때문에 골탕을 먹는 것은 국민대중임을 알아야한다. 이점 신민당은 선거법 협상의 완결을 강력히 추진한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예산안 심의와「버터」하려는 소승적인 입장을 지양함이 현명할 것이다.
끝으로 예산안을 삭감 내지 수정하는데 있어서 국회는 보다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한 다는 것이다. 신민당이 약 3백억원의 삭감투쟁을 벌이겠다고 하는 것은, 동 당이 새해 예산안을『세입 내 세출원칙』을 무시하고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적자예산으로 보기 때문이라 한다. 이런 견해가 반드시 타당한 것이냐에 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국민적 입장에서 바라고 싶은 것은 그러한 삭감 투쟁을 벌이는데 있어서 만인이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의 제시가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여당이라 하여 덮어놓고 정부가 내놓은 예산안을 무수정으로 통과시키려 한다든지, 또 야당이라 하여 덮어놓고 예산안을 깎아버리려고 투쟁한다는 것은 입법부의 독립성이나 예산심의권의 본질에 비추어서 공히 못마땅한 경향이다. 여·야는 예산안 심의에 있어서 제각기의 입장에서 당의 요구를 관철코자 하기에 앞서 국가의 이익과 민중의 복지를 앞세우는 애국적인 사고방식부터 갖추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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