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백지화...좌회전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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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치안국은 11월 1일부터 실시예정이던 서울시내의 교통신호 제식 변경(좌회전 금지) 계획을 백지화했다. 예정일을 불과 5일 앞두고 갑자기 계획을 뒤엎은 당국은 그 이유로서 이의 실시에 앞서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그대로 남았다고 시인, 이 여건들이 해결될 때까지 시행을 연기한다고 밝히고 뒤늦게 5가지 문제점을 내놓고있다. 교통정리 기술상, 또는 수도교통의 현대화 과정에서 꼭해야할 일로 받아들여졌던 이 계획이 공포에 그친 경위는 무엇인가.
이 신호 제식 변경은 지난 9월 14일 내무부에서 공식 발표했으나 이 이론이 연구되기는 5년 전이었다. 당시 서울시 교통과장이던 박동언 총경이 이를 채택하도록 건의한바있었으나 그때도 「여건이 성숙치 않았다」는 이유로 보류된바있었다.
지난 9월 14일 갑자기 이 계획을 발표한 것은 미국을 시찰하고 온 박경원 내무부 장관이 이 제도를 연구해 보라고 지시함으로써 구체화했었다.
26일 상오 치안국 교통과장 박용전씨는 이번 시행착오는 단순히 선행문제의 미해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그 다섯 가지 문제점으로 ①이면도로 개발의 부족,②이면도로를 가로막은 불법 노상주차의 처리방안이 없는 것 ③신호기 등 정리시설의 미비 ④도심 획정이 안된 것, ⑤「버스」노선의 재조정이 어려운 것을 들었다.
이와 같은 당국의 설명은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운 뜻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선행조건은 오래 전부터 수도교통의 문제점으로 제기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계획의 연기는 이 같은 이유보다 관계기관의 비 협조에서 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면도로의 사정을 보면 4대문 안의 주요 골목길 가운데 30여개 도로가 완전히 기능이 마비돼 있으며 좌회전 금지조치에 치명적 결함이 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미도파∼조선「호텔」골목의 예를 보면 항시 노상주차로 60%의 도로 기능이 마비되어 있다.
도로 공학상의 계산으로는 6m도로의 경우 2차선 활용이면 40%, 1차선이면 60%까지 기능이 마비되는 것으로 나타나있으며 무교동 골목·인사동 골목 등이 모두 이와 같다.
이 노상 주차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도로 교통단속법에 의해 경찰은 이 불법주차를 단속할 수는 있으나 엄청난 차를 전부 단속할 수는 없고 더욱 이들 무단 주차 차량은 교통 경찰을 비웃는 권력층이라는 점에서 경찰이 주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치안국은 노상주차의 해결책으로 현재 건설부에서 성안 중에 있는 주차장법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은 도심지의 고층건물은 1층에 자체 주차장을 마련해야하며 앞으로 건축허가는 반드시 주차장을 갖춰야 하며 기존건물의 지하에 있는 「다방」·「바」등 유흥업소는 될수록 주차장으로 전환토록 촉구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신호기의 문제는 예산과 관계되어 지금껏 손을 대지 못해 이 제식 변경의 무기 연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있다.
시내 72개 주요 십자로 가운데 있는 20개의 신호등은 6·25 직후 미군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20년이나 된 낡은 것들이며 제식이 변경되어 차가 일방적으로 주행하면 많은 골목이 막히게 되는 사태가 일어날 때 이를 부분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좌회전 금지 조치에는 반드시 광역제어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것은 자동감응 제어장치로서 지령탑 「컨트롤」이 되어야 하는데 이 시설이 전혀 없어 시행 연기가 불가피 하다는 것이다.
이 시설은 주요 십자로마다 유선(또는 무선) 감지기를 설치, 차가 폭주하거나 한산한 도로를 분석, 차의 흐름을 중앙탑에서 조절하는 것인데 이것이 없이 다만 파랑· 빨강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여기에는 1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나 지금 형편으로는 2천 5백 80만원의 재래식 신호등 개조 비용도 없어 손을 못 대는 형편이어서 71년도 예산에 이를 반영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있다.
이밖에 또 하나의 이유는 도심권 구획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제식 변경을 위해선 4대 문안 이든가 좁혀서 세종로 중심 5㎞ 지역 안이든 선을 그어 대형차의 출입제한, 또는 주차 엄금 등의 지역적 조치가 있어야하는데도 아직 시외「버스·터미널」이 도심에 박혀있는 현실에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평가이다.
이와 함께 신호등에서 20m∼30m 거리 안에는 주차장을 없애는 조치도 필요한데, 시청 앞의 경우는 신호등에서 20m거리에 반도 「호텔」의 주차장이 있는 등 혼선을 빚어 이와 같은 교통제어의 기초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식 변경의 설치가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정기 노선 조종이다.
치안국의 이 지시에 따라 「버스」노선을 조정해야할 서울시 운수당국자는 「버스」는 차량 운송법에 의해 허가된 공익사업 기구라고 핑계, 도로 교통법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내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조정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실시연기의 큰 이유의 하나.
이에 대해 항간에서는 「버스」업자의 압력에 의해 노선조정이 어렵다는 등 말이 많으나 압력의 형태는 밝혀지지 않아 알 수 없다.
문제는 당초 이 계획을 발표할 때 치안국 교통담당자들이 이와 같은 선행 여건의 정비를 알지 못했던가 하는데 문제가 있다.
충분히 알고있는 전문가들이 성급히 발표했다가 불과 두 달만에 뒤엎는 처사는 정책빈곤을 드러낸 것이 아니면 관계당국의 비협조와 「버스」업자의 압력으로 근대화 작업을 중단했다는 평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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