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해방에서 환국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덕혜옹주는 비행기 속에서 발작을 할까봐 몹시 걱정을 했었는데 도중 아무일도 없이 귀국하였다. 38년만에 옹주를 맞이한 본국에서는 너무나 격변한 옹주의 모습을 보고 동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각 신문에서도 대대적으로 옹주가 귀국한 사실을 보도하였다.
덕혜옹주가 귀국한 것을 가장 기뻐한 것은 누구보다도 악선재에 계신 윤대비와 운현궁의 노공비였으며 옹주에 있어서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어렸을 때 젖을 먹여준 유모 변씨가 아직도 생존해 있는 사실이었다.
옹주의 생모 양귀인은 옹주가 일본으로 끌려간 뒤 노심초사 끝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지 이미 오래되나 변씨는 당년 71세의 고령이건만 원기가 왕성하며 친딸 이상으로 옹주를 아끼고 또 옹주를 사랑하여 38년 동안이나 그리워했던 만큼 김포공항에 옹주가 도착하자마자 어찌나 반가와 하고 기뻐하는지 마치 실성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공항에 나왔던 사람들도 모두 따라서 울었다고 한다.
기억력을 상실하고 하얀 벽만 바라보고 거의 반생을 지내온 덕혜옹주도 친어머니와 같은 변유모의 따뜻한 애정에 마음이 녹았음인지 귀국한지 얼마 아니 되어서 어렸을 때 궁중에서 배운 언문(한글)으로 윤대비와 영친왕께 문안의 편지를 써서 모두들 놀라게 하였다. 애정에 굶주린 사람에게는 역시 애정이 제일 좋은 약이었던 것이다. 영친왕비 방자부인은 시누이 덕혜옹주를 먼저 본국으로 보내놓고 자기도 그해 6월 20년만에 해방 후 처음으로 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첫째 일각이 여삼추(일각여삼추)로 왕전하의 귀국을 고대하는 윤대비께 문안을 드리고 둘째 왕전하의 귀국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청량리 영위원에 묻혀 있는 큰아들 진의 무덤을 가보는 일이었다. 그때의 심경을 영친왕비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운 부산의 산과 한강의 흰 물줄기가 눈 아래 보인 것은 비행기가 하네다(우전) 공항을 떠난 지 겨우 2시간, 얼마 안 되어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는데 마치 꿈과 같은 일순간이었습니다. -그것으로 20년 동안의 망향의 그리움이 풀리련만-이 짧은 여행조차 할 수 없는 병상의 주인이 가여워서 못 견디었습니다. 동경을 출발할 때
『그럼 갔다오겠읍니다.』
라고 바깥어른의 손을 잡고 인사를 여쭈니까,
『…….』
아무 말씀도 못하고 그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약간 고개를 끄덕이실 뿐이었읍니다.
혹시 대비마마께라도 무슨 전갈 말씀이 있을까해서 잠시 기다렸으나 그것도 없고 다만 나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아버리셨읍니다.
말을 하자면 백만 마디로도 다 하지 못할 회포가 있으실 터인데 단 한마디도 말이 되지를 않는 모양이었읍니다.
비행기의 문이 열리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나며 밀려든 사람들과 환영의 꽃다발에 나는 완전히 파묻히고 말았읍니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그 소리를 듣고 『아, 아, 벌써 서울에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샘솟듯 하여 두 볼을 적시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바깥어른은 항상 『의사나 간호원에게 부축되어서 가기는 싫다. 나는 내 발로 조국의 땅을 밟고 싶다. 그리하여 고국의 산천을 이 눈으로 보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었고 서울에 계신 대비마마로부터는 『살아있는 동안에 꼭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자주 왔으므로 이번에 내가 귀국한 것은 무엇보다도 주인의 대리로 온 것이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즉시 창덕궁으로 향하였읍니다.
악선재로 들어서니 대비마마께서는 당년 73세의 고령이시건만 매우 건강하신 듯 하였고 자애에 넘치는 눈으로 손을 내미시었읍니다.
『대비마마….』
『오오 비전하….』
그 다음은 오직 눈물뿐이었읍니다.
『오랫동안 직접 문안을 드리지 못하여 황공하옵니다.』 이렇게 겨우 인사의 말씀을 여쭈었다. 대비께서는 바깥어른이 병중의 몸으로는 귀국하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는 말을 들으시고.
『왕전하는 무슨 말씀을…. 여기는 부모의 나라가 아닙니까. 누워 오시든 업혀 오시든 어떤 모양으로든지 돌아오시는 것이 옳은 일이오. 나도 이젠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니까.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왕전하를 만나 뵈옵고 싶어한다고 여쭈어 주시오. 기다리고 있다고 꼭 전해주시오.』
『잘 알았읍니다. 반드시 그렇게 말씀해서 꼭 가까운 장래에 귀국하시도록 하겠읍니다.』
그렇게 말씀 여쭙고 나는 그때의 대비마마를 위해서라도 바깥어른의 귀국은 꼭 실현해야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던 것이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