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담으로 국회 정상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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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입을 빌려 여야 대표와의 3자 회동을 제안했다. 16일 국회를 방문해 의장단에게 해외 순방 결과를 설명한 뒤 자연스럽게 여야 대표를 따로 만나 모든 국정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겠다는 것이다. 이 수석은 ‘회동’이라고 했지만 국정 현안을 폭넓게 논의하려는 점에서 ‘회담’인 셈이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과 그에 따른 조직 개혁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며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채 의제 목록을 놓고 청와대와 교섭하고 있다고 한다. 실무 차원의 일로 밀고 당기기에 들어간 것으로 미뤄 민주당도 회담 자체를 전면 거부하진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국민들도 추석 연휴 전에는 국회가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이 수석은 회담을 제의하면서 의제에 대해 제한을 두진 않았다. 따라서 청와대와 민주당 모두 이 문제로 회담이 불발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고 유연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민주당이 의제를 이유로 회담을 거부한다면 모처럼 국회를 정상화시킬 기회를 차버린 셈이다. 꼭 다뤄야 할 의제는 회담장에서 서로 꺼내놓으면 된다.

 박 대통령도 국정원 문제를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전 정부에서 일어났던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설명, 그리고 정보역량 강화와 정치개입 근절을 핵심으로 하는 국정원 개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미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개혁안을 주문해 놨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 하루빨리 국민의 공감을 얻는 개혁안을 마련해 여야와 진지한 토론을 거쳐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번 회담에선 그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투명한 일정을 밝힘으로써 국정원발 정국 경색을 푸는 게 중요하다.

 국정원 문제가 정치권의 이슈라면 경제는 국민적 사안이다. 평범하고 성실한 국민 대부분의 관심사는 국정원 개혁보다 역시 경제다.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그 핵심이다. 여기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지금은 여야 모두 경제에 진력해도 모자랄 만큼 엄중한 시기다.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방법론이 다르다면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면 된다.

 또 국회는 당장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있다. 세수는 모자라고 쓸 곳은 많은데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배분할지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소모적인 정쟁 탓에 시간에 쫓겨 부실한 심사가 되풀이된다면 또다시 소중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고 만다. 정치불신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민주당은 국정원 문제와 관련해 약 한 달 반 동안 장외투쟁을 벌여 왔다. 새누리당 역시 집권당으로서 원숙한 정치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의정치의 주역이어야 할 여야 스스로 손을 묶어버린 상태에서 대통령만 바라보는 형국이었다. 결국 대통령이 대화의 물꼬 트기에 나선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스럽지만, 이 역시 우리 정치의 미성숙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국회가 마비될 때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면 정치 선진화의 길은 멀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