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공연계 쥐락펴락하는 극장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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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공연은 무대 세팅에만 수개월이 소요되는 등 추가 제작비 부담 때문에 중간에 극장을 바꾸는 경우가 흔치 않다. 그런데 브로드웨이에서는 이 같은 일이 가끔 벌어진다.

3년 전쯤 뮤지컬 '미녀와 야수'는 브로드웨이에서 목이 가장 좋기로 소문난 팔라스 극장을 비워야 했다. 디즈니사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뮤지컬 '아이다'가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슈베르트 극장에 화제의 뮤지컬 '집시'가 3월 개막되면서 이곳에서 공연하던 '시카고'가 다른 극장으로 밀려났다.

'미녀와 야수''시카고' 등 잘나가는 뮤지컬이 이런 치욕을 당한 이유는 뭘까. 그 배경에는 브로드웨이 극장주들의 막강 파워가 자리한다. 이들은 최대 제작자로도 군림하는데, 대박이 확실한 신작을 위해서라면 순항 중이던 기존 작품을 여지없이 밀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공연계가 극단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극장은 기획 공연과 대관 공연을 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특이한 현상이다.

현재 브로드웨이의 극장수는 39개. 이 중 슈베르트사가 17개, 네덜란더사가 9개, 쥬잠신사가 5개를 소유하고 있다. 3개의 극장 기업들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극장에서 올라가는 작품마다 최대 제작자로 군림해왔다. 작품 선정과 극장 관리는 물론 배우.연주자.기술인 노조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프로듀서.극장주 연합회'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극장주들이 다수의 극장을 손에 쥐고 작품의 흥행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분명 독점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극장 기업들은 작품 선정과 캐스팅의 원칙을 확립했고 투자의 기준을 마련했다.

1970년대에 심각한 재정난을 겪은 뉴욕시에 'I♥NewYork' 캠페인을 제안함으로써 관광객들을 다시 끌어모아 뉴욕시의 재정을 살린 것도 이 극장들이었다. 이들은 절대적인 독점을 활용해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독립된 상권으로 유지시켜온 기여자이기도 하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 (www.nyl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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