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상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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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불량상품전시회가 10일부터 중앙공보관에서 열린다. 여기 전시되는 상품이 모두 1천5백39점이나 된다고 하니, 시장에 나도는 상품들의 태반이 적발된 셈이다. 그렇다고 새삼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현대문화는 소비문화라고 한다. 그것은 일시적 조제라는데 특징이 있다. 여기에 대응하는 사람의 감수성도 찰나적이며 항상 변해가고 있다.
그러니까「미」나「질」이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겉으로 그럴듯하기만 하면 뭣 이라도 다 받아들인다는 무책임이 따른다.
상품의 경우 소비자의 무책임한 선택을 체크하는 것은 물건의 값과 그것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느냐 하는 조건들이다. 그러나 국산품이란 모두 다 그게 그거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그런 선택의 여지조차 거의 없게 된다.
여기에 또 생산자 측의 속임수가 낄 때에는 더욱 소비자의 눈은 어두워진다. 이번에 적발된 불량상품 중에는 허위품질 표시·상표도용·외제위장 등도 많다. 더군다나 대 메이커의 상표가 붙거나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는지, 제법 의젓하게 KS표시까지 한 상품이 끼어 있다는 데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도 별로 놀라운 얘기는 아니다. 정부기관인 전매청에서 내놓는 담배에조차 이를테면 불량상품이 아니면 기준 미달의 담배가 있다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량상품전시회는 소비자들에게 이런 상품들은 절대로 사지 말라고 권하는데 뜻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런 상품들을 절대로 안 살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선 골라 살만큼 국산품의 종류가 풍부하지 못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국산품은 어느 것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국산품 전체에 대한 불신감이 이미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이다.
불량상품전시회와 나란히 해서 우량상품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그렇지만 실상 기막히게 좋은 상품도 아닌, 그저 우리네 기준에 합격한 정도를 우량 상품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은 좀 쑥스런 얘기다.
어쩌면 상혼만 있고, 상도덕은 찾기 어려운 요새 불량상품이 범람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의심이 가는 것은 어떻게 했으면 이 많은 불량상품들이 나돌도록 관계당국에서 지금까지 내버려두었는지. KS마크는 또 어떻게 붙게 되었는지 하는 문제들이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불량상품을 이처럼 대량 적발한 당국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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