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하는「콜레라」박사|미생물학사의 산증인 서울대 기용숙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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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나라 미생물학사의 산증인인 기용숙(의박·65) 교수가 지난 8월31일 정년으로 그의 반생을 몸담아온 서울대 의대를 떠났다.
콜레라 박사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기 교수는 1929년 경성의전을 졸업한 후 만주 위생연구소에서 10여년 동안 연구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곤 줄곧 서울대의대 미생물학 교실을 지켜왔었다.
미생물학 중에서도 특히 면역학의 권위인 기 교수는 콜레라 등 전염병 방역에 직접 뛰어든 동기를『8·15 해방의 감격과 환희를 어떤 면에서 승화시켜야 할 것인가가 최대 과제였을 때 이듬해인 46년 콜레라 발생으로 1만 여명이 죽어 가는 참상을 목격하고 전염병을 없애는 사업에 헌신할 것을 결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29년 이후 다섯 차례의 콜레라 발생을 겪는 동안 방역에 있어서 새로운 이론을 확립했다는 기 교수는 긴 교수생활을『어렵고 외로운 생활』이나 때로는『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회고했다. 그는 대학교수란 학자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이어야 하며 또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직접 참여해야 할 삼중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 붙였다.
『오랫동안 대학 연구실에서 전공에 몰두하다 보면 편벽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기 쉬운 것이 학자들의 애롯 점』이라고 말하는 기 교수는 학생들에게『사회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과학자의 그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서는『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 문제를 직시하여 건전하고 창조적인 사회 풍토를 조성하고 또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는데 앞장서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고향이 황해도 은율인 기 교수는 부인 김춘숙(54) 여사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고 있으며 교육자로서의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지난 2월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인 모란장을 받은바있다.『정년이 됐으니 일단 물러날 뿐』이라고 담담한 표정으로 정년퇴직의 소감을 술회하는 기 교수는 앞으로 당분간은 강사자격으로 서울대 의대에서 미생물학 강의를 계속 할 것이라고 한다. <김영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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