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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로 본 갑을 판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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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택배업계가 비상 운영 체제에 돌입했다고 한다. 올 한가위 연휴를 앞두고 오가는 선물 배달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접수 물량이 10% 이상 늘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흔히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 선물은 ‘곳간 인심’과는 무관해 보인다. 최근 경기 지표를 보면 곳간이 이전보다 풍성해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선물은 ‘선물’ 이상이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은 관계에선 더욱 그렇다. 뇌물을 받아 구속된 정치인·공직자들이 한결같이 “단순한 선물이었다”고 둘러대지 않나. 이들에게 추석 선물은 선물 축에도 끼지 못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추석 선물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다 예민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너무 예민하다’고 보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유력 제조업체의 40대 중견 간부에게 들어보았다. “7월 말이면 백화점 같은 데서 300쪽짜리 카탈로그가 와요. 그중에서 적당한 품목을 고르면 되죠. 선물로 나가는 비용은 부차적이에요. 외부와 네트워크를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는 선물에 대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100명 중 10명 정도에게 반응이 와요. ‘잘 받았다’는 인사 아니면 ‘수취 거부’죠. 반응이 오는 쪽이 아예 없는 쪽보단 낫습니다. 안 받겠다는 사람은 이후론 안 보내면 되니까.”

 정부 산하의 한 공공기관장에게도 물어보았다. 60대 초반의 그는 보내기도 하지만 받는 선물이 많은 위치에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선물이 오면 기분은 별로 안 좋아요. 그래서 돌려보내지.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까 보낸 거지, 어디 나를 알아서 보냈겠어요?”

 국내 유력 건설업체의 간부 말을 들어보았다. 인사·구매 등을 거치고 민원 많은 건설 현장도 경험한 50대 초반이다. 건설업계는 추석 선물 노하우가 달랐다. “받는 분의 취향을 잘 살펴야 해요. 그러려면 평소에 접촉을 많이 해야 하지.” 그는 협력업체로부터 오는 선물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이구, 우린 받으면 큰일 나. 옛날이랑 많이 달라요. 외부 접촉이 많은 부서는 회사 차원에서 택배업체에 직원 명단을 주고 확인도 한다니까.” 안 받으면 주지도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는 “그래서 추석 선물이 웃긴다”고 말했다. “말이 선물이지 결국 갑을 관계의 반영 아니겠어요. 이 문화가 없어지려면 갑이 ‘안 받겠다’고 밝혀야 해요.”

받아도 되는지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맹자(孟子) 말씀을 참고하면 된다. "받아도 좋고, 받지 않아도 좋을 때는 받지 말라. 받으면 청렴을 해치게 된다.”(可以取 可以無取 取 傷廉).

 그런데 이 건설업체는 선물을 어떻게 보낼까. 택배를 통하면 나중에 밝혀질 수 있는데 말이다. “귀한 분들껜 택배업체를 통하지 않고 우리가 직접 배달해요. 그래야 그분이 받았다는 흔적이 안 남으니까. 추석 선물이 웃기면서도 절대 안 웃긴다니까.”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