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바캉스」풍조|유주현<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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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생과 궁상으로 찌들어온 민족이다. 인생의 목적은 궁상이나 고생이 아니다.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계절은 한껏 싱싱하다. 산은 무성하고 바다는 율동한다. 하루 이를 틈을 낼 수 있는데, 이 더위에 눈살이 찌푸려져도 짜증스럽더라도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너무도 여유가 없는 인색이다.
「래저·붐」이 일고 있다. 지나친 사치나 무모한 소비가 아닌 건실한 방법이라면 내일의 활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권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새는 「바캉스」라는 것이 또 한창이다. 불건전하고 사치스러운 풍조라고 개탄하는 소리가 높지만 글쎄 그럴까.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불쾌지수가 상숭한다. 소음과 매연으로 도시의 공해는 살인적이란다. 용돈이 있으면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다. 용돈이 없으면 집안에 박혀있는 것이 더욱 짜증이 난다. 어디 갈 데가 있는가. 남의 집으로 뛰어들면 가택침입이다. 영화는 시시하다. 다방은 대장균의 배양실이다. 한눈이라도 팔다가는 자동차의 밥이 된다. 어디 갈 데가 있는가. 바다로 산으로 가서 팽팽한 긴장을 풀고 찌푸린 눈살을 펴고 모두가 평등하게 하루 이틀 즐겨보는 것쯤은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그것을 지나치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른이고 부유층이고 지도층이고 식자들이다. 그리고 사치하는 사람도 낭비하는 사람도 어른이고 부유층이고 지도층이고 식자들이다. 학생과 젊은이들은 탈선할 뿐이다. 젊은이들의 탈선은 돌연변이의 현상이 아니지만 어쨌든 탈선은 질서와 윤리와 공덕(공덕)의 파괴니까 막아줘야 한다. 내 집 고등학생 녀석이 저희들 누나와 함께 대천엘 갔다. 어느 대학생이 말 하더란다.
『야! 너두 썩었구나, 푹 썩었어.』가족끼리 왔으니 얼마나 답답하냐는 인사란다.
그런 사조를 고쳐주는 것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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