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군사응징 추진 선봉에 … 오바마보다 더 강한 존재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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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존 케리(사진)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시리아 군사개입 추진의 선봉에 선 그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보다도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방송 5곳 출연, 당위성 설파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부르며 시리아 공습의 당위성을 설파 중인 케리는 1일(현지시간) CNN·NBC 등 주요 방송 다섯 곳의 모닝 토크쇼에 출연했다. 오바마가 시리아 공습에 관한 의회 승인을 받겠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케리는 방송에서 일관되게 세 가지 사항을 강조했다. 먼저 지난달 21일 참사가 발생한 구타 지역에서 응급 구조 요원들이 확보한 샘플을 분석한 결과 맹독성 신경가스인 사린이 사용됐다는 ‘증거’를 내놨다. 그리고 의회 승인을 구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지지를 보다 확고하게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오바마의 결정을 ‘옹호’했다. 마지막으로는 국가 안보 위협이 걸린 중대한 사안에 있어 의회가 등을 돌릴 리가 없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앞서 지난달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구타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주범으로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을 지목하고, 응징을 위한 군사작전이 필요하다고 처음 공식적으로 밝힌 것 역시 케리였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아랍연맹(AL)이 내놓은 성명에도 케리의 막후 작업이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아랍연맹은 이날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의를 한 뒤 “시리아 알아사드 정부가 화학무기 공격에 완전한 책임이 있으며 유엔과 국제사회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공습 카드를 꺼낸 직후 군사 개입에는 반대한다고 했던 것과는 온도차가 있다. NYT는 케리가 회의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이자 정보국 수장인 반다르 빈 술탄 왕자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논의한 결과 미국의 입장에 보다 부합하는 성명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케리는 이번 주말 브뤼셀을 찾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을 상대로 시리아 공습 필요성을 강조할 계획이다.

상원 외교위 28년 경험·인맥의 힘

 전임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각광받던 것에 비하면 그간 케리가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하지만 시리아 사태 등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국제 분쟁 상황이 계속되면서 케리의 외교력이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 기반은 28년 동안 잔뼈가 굵은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쌓은 경험과 인맥이다. 케리는 외교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 파키스탄 경제 원조 등의 국제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다뤄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설명했다. 그가 시리아 공습에 있어 의회를 설득할 적임자로 꼽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오바마가 두 번째 임기 시작 뒤 첫 해외순방지로 이스라엘을 선택하면서 물꼬를 튼 중동 평화협상 재개 논의 역시 케리가 바통을 이어받아 성사시켰다. 케리가 올 2월 국무장관 취임 이후 7개월 동안 이스라엘을 네 차례에 방문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례적으로 단호하게 움직인 케리의 노력이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신중한 오바마의 행동대장 역할

 특히 이번 시리아 사태는 중동 문제에서 종종 오바마보다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던 케리가 ‘팀 플레이어’로서 활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WP는 “오바마의 의회 승인 요구 결정이 케리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케리는 반대 의견을 개진하지도 않았고 두 사람은 곧 의회 설득 대책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케리는 오바마의 결정에 비판이 일자 “대통령의 권리” “용감한 결정”이라며 굳건한 지지를 보냈다. 시리아 결의안이 의회에서 통과된다면 이는 신중한 지휘자 오바마와 강경한 행동대장 역할을 해낸 케리의 합작품이 되는 셈이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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