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피사의 사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기울어지되 쓰러지지 않는다. ' 저항과 지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피사 중심에서 수백년 동안 쓰러지지 않은 채 '경사(傾斜)의 미학'을 자랑하는 '피사의 사탑'이야기다.

피사의 사탑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만약 사탑이 완전히 바로 선다면 수백년 동안 신비로움을 가지고 유지됐던 하나의 예술품과 역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피사의 사탑은 왜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신비 때문이 아니다. 이를 받치고 있는 엄청난 돈과 현대 과학의 힘 때문이다. 탑은 애당초부터 기울어진 채로 준공됐고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쓰러지게 돼 있었다. 맨 처음 탑을 만들던 건축가들이 지반 침하를 알면서도 눈속임과 사기술로 공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피사의 사탑은 예술과 사기, 현대과학과 신비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가 결합돼 만들어진 관광상품일 뿐이다. '피사의 사탑'이 착공된 것은 1173년이었고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3층 높이에 이를 때였다.

처음엔 북쪽이 기울었고 원인은 지반침하였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재공사 대신 북쪽의 기둥과 아치를 남쪽보다 조금 더 높게 올리는 속임수를 썼다. 완공 때까지 건축가들의 속임수는 계속돼 1370년 준공시 피사의 탑은 이미 1.6도 기울어져 있었다. 때문에 준공 후엔 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막대한 돈과 노력이 투입됐다.

1838년의 대공사, 1934년의 콘크리트 투입, 1990년대 초의 강철선 등에 이어 요즘엔 기울어진 반대쪽의 흙을 조금씩 파 조절하는 방식이 동원된다. 1990년도 이후에 투입된 돈만도 3천5백만달러가 넘는다.

피사의 사탑은 예술품이라 반드시 바로 세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회에 이 같은 잔꾀나 속임수가 팽배한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후세에 부과된다. 그래서 역사는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때마다 개혁의 칼날이 시퍼렇게 선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탑에 쌓여 있는 역사의 이끼가 한꺼번에 벗겨버릴 수 없는 인연으로 얽혀있듯 정치와 경제, 성장과 부패, 시민과 지배권의 충돌은 복잡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문명비평가 리트벨라제 같은 이는 "역사는 이런 사회적 비용을 유지하려는 측과 그 비용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자들의 인연의 끈 잡기 싸움"이라고도 했다. '피사의 사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그 후엔 또 다른 사탑을 만들지 않은 이탈리아 건축사는 그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