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 가슴 쓸어내리게 한 대구역 3중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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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나마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지난달 31일 대구역에서 발생한 열차 3중 충돌은 비록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고 성격으로 봐서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찔한 사고였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인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고 무궁화호의 여객전무는 정지신호가 출발신호로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무전기로 기관사에게 출발통보를 보냈고, 무궁화호 기관사는 교신 뒤 신호등을 확인하지 않고 열차를 출발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상행선 무궁화호가 조금 먼저 상행선 KTX의 옆구리를 추돌했고, 이 때문에 KTX 일부 동체가 하행선 본선으로 탈선했고, 마침 역으로 들어오던 하행선 KTX가 탈선한 동체와 부딪치는 초유의 3중 충돌이 발생했다.

 한마디로 철도 종사자들의 방심과 안전불감증이 이번 사고를 부른 핵심 원인인 셈이다. 신호를 확인하고 운행한다는 기본적인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아 이런 사고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사고를 접한 국민은 3중 충돌이라는 황당한 사고 내용보다 2중·3중의 안전장치를 무용지물로 만든 코레일 직원들의 안전 불감증에 더 분노하고 있다

 기가 막힌 사실은 사고 직후 승객들이 열차에서 빠져 나와 안전지대로 피신하는 전 과정을 철도 직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는 점이다. 사고 직후 이를 알리는 안내방송을 한 걸 제외하고는 탈출 때까지 승객들이 방치됐다는 얘기다. 사고도 사고지만 뒤처리가 이렇게 허술한 건 더욱 문제다. 고객 안전을 위한 코레일의 대비 태세에 공분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코레일은 사고에 대비해 승객을 보호하기 위한 열차와 역 근무자의 비상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고 훈련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팽정광 코레일 사장직무대행은 사고 당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코레일의 진정한 사과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숨김없이 밝히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철도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인력·시설·시스템·매뉴얼을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승객이 가장 바라는 건 안전 대책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다지만 서울역·영등포역도 이번에 사고가 난 대구역처럼 고속열차인 KTX와 일반 열차, 전철 등이 모두 지나가고 선로가 겹치기도 한다. 코레일은 철도에 대한 승객들의 불안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열차 종별로 선로를 분리하는 등 유사 사고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고 승객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확실한 개선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나사가 풀린 일부 직원의 안전의식도 바짝 조여야 한다. 그래야만 ‘철도는 안전과 동의어’라는 말을 믿어온 고객의 신뢰를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