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아동 25% 영양실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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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른들의 전쟁과 권력다툼에 이라크 어린이들이 야위어 가고 있다. 어린이 네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다. 구걸하다가 힘이 없어 쓰러지는 어린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라크 정부는 아직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재건 계획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어린이들이 최대 피해를 보고 있다.

◆'아동 대학살'=유엔 인권위원회 보고서는 지난달 말 "이라크에는 매일 조용한 아동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다"고 엄중하게 비난했다. 미군 등 점령국과 새 이라크 지도부의 방만한 경제.구호대책에 대해 "살인의 한 형태"라고까지 표현했다. 보고서는 특히 "5세 이하 어린이의 영양실조 비율이 이라크 전쟁 이후 거의 두 배로 높아져 지난해 말 8%에 이르렀고, 이라크 어린이들의 25% 이상은 만성적인 영양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원회가 이같이 비난한 것은 현재 이라크 경제 상황이 10년간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아온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보다 더 암울하기 때문이다.

◆책임 소재=미국은 유엔 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 대해 공식논평을 거부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지난 1일 보도했다. 그러나 인권위 연례회의에 참석한 미국 대표는 "설문으로 작성된 보고서는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라크 경제.사회와 관련한 정확한 지표가 아직 나와 있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범아랍 알자지라 방송은 3일 "2년이 되도록 통계조차 만들지 못한 것 자체가 미국 전후복구정책의 허점을 잘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미군 당국은 핼리 버튼사 등 대규모 다국적기업을 동원해 원유 생산시설 보수와 안전에 막대한 금액을 사용해 왔다. 반면 주요 도시에선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잔해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실업률이 50~60%에 이르지만 실업자들을 간단한 청소작업에도 아직 투입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어두운 전망=미군과 이라크 임시정부는 모든 것이 테러리스트의 공격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총격과 자폭공격이 계속되는 곳에선 아무런 경제대책도 효과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략연구소의 사둔 둘라이미 소장은 "전쟁 직후 6개월 동안 저항공격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며 "그 당시 탄력적이고 적극적인 재건사업이 벌어졌다면 현재의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실업과 배고픔에 못 이긴 상당수 사람이 저항과 범죄조직에 가입했다"고 지적했다. '경제 악화-테러 확산-경제 더욱 악화-테러 더욱 확산…'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계속 표류하고 있는 정치권도 문제다. 총선이 끝난 지 2개월이 지나서야 제헌의회 의장이 3일 겨우 선출됐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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