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란 2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6월은 회상의 달이다. 누구나 그 처절했던 시간들을 한번씩은 회상하게 된다. 전쟁이 그처럼 가까이에서 누구나의 심금속에 파고든 일은 우리의 역사상엔 일찌기 없었다. 세계사의 드라머속에서 우리는 실로 터무니없는 비극을 맞고, 또 견디어야 했다.
분단조국은 온통 초연에 휩싸이고, 평화의 빛은 어디에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소망과 실의와 절규속에서 모두가 운명같은 전화에서 발을 굴렀다. 민족은 어디에 있으며, 이 역사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우리는 초조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6·25 동란은 적어도 우리의 내면에선 세기적인 출애급기나 다름없는 체험이었다. 모든 의식에, 모든 가치와 사고에, 그리고 생활양식까지도 침식당하고 말았다. 오늘의 우리는 벌써 동란전의 그 모습은 아니다. 오늘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란후 20년-. 이른바 2차대전후의 얄타체제는 어느새 무너지고, 세계는 새로운 질서에의해 지배되기 시작하고 있다. 동서의 의미는 부분적으로 하나의 상흔처럼 과거를 기억하고 있을 뿐, 그것이 바로 세계사의 맥락은 아니다. 평화를 희구하는 인류의 의지는 한결 밝게 눈을 뜨려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미래에의 발돋움에 여념이 없으며, 세계는 마치 건설의 장인 것처럼 해머들을 지상의 곳곳에서 휘두르고 있다. 인간은 결국 생을 추구하는 것이지, 그 반대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자명한 각성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같다.
한 전략가는 인류사상 적어도 8천회의 전화가 이 지상에서 일어났다는 보고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원 2천년의 역사에 인류는 매년 평균 4회의 전쟁을 일으킨 셈이다. 그러나 그 인류를 전멸할 수 있는 핵무기의 등장과 함께 평화에의 집념이 더욱 공고해진 것은 아이러니컬 한 일이다. 인류에겐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사에 거역하려는 무리가 있으며, 그것은 바로 북괴의 야욕 만만한 호전성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도발을 거듭하고 있으며 무력만이 모든 질서인 듯 생각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역사의 방향을 거꾸로 움직이려는 자들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평화에의 집념을 조국건설에, 그리고 인간회복에 쏟아야 할 것이다. 북귀에 대항하는 최대의 무기는 이것뿐일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