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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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안효숙 지음, 마고북스, 7천5백원

5년 전 한줄기 예고도 없이, 정말 도둑처럼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가 찾아 왔을 때 많은 이들은 망연히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아! 이렇게 주저앉는구나'. 곧이어 거리와 지하도는 퀭한 눈으로 떠도는 노숙자들로 차기 시작했고, 엄마 따로 아빠 따로 아이들은 친척집으로… 뿔뿔이 흩어진 해체된 가족의 이야기가 사방에 흩날렸다.

행일까 불행일까.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던 재앙은 오래 가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의 한숨은 벤처와 주식.부동산투기.로또 복권이야기로 대체됐다.

사람들은 마치 엄마 손을 놓친 아이가 다시 엄마를 만났을 때처럼, 과거보다 더 악착스럽게 돈, 돈, 돈, 돈에 매달렸다.

한데 그 많던 '이산가족'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여전히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을까. 아니면 다시 모여 상처를 봉합했을까. 재회했다면 그간의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충북 청주에 사는 42세 '아줌마'가 쓴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IMF가 남긴 상흔(傷痕)에 대한 작은 보고서다. 알차게 꾸려오던 가게가 부도를 맞고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

"전기도 보일러도 모두 끊긴 깜깜한 거실에 무릎 조아리고 몇날이고 있는데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였다.

"이렇게 된 바에 언제 빚갚고 일어서겠느냐, 대충대충 살자"는 남편의 술주정을 뿌리치고 아이들을 할아버지댁에 맡기고 서울로 향한다. 딸의 병원비를 마련하려 밀입국한 조선족 여인과 함께 식당일을 했다.

"주방 뒤편 철제 계단을 올라가면 고단한 몸을 누일 두 평짜리 방이 있다. 빛이라고는 한점 들지 않는 그 방에서 두 여자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절로 쏟아지던 깊은 한숨으로 시리고 시린 이야기들을 삼켰다."

거리에서 빵을 굽기도 하고 차량 행렬들 사이로 면도기를 팔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화장품 꾸러미를 지고 5일장을 찾아 떠도는 장돌뱅이가 됐다. 아이들도 다시 품안에 안았다.

"한 발자국만 밀려도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황이었을 때도 한번도 희망을 놓은 적이 없는" 그녀에게 힘이 돼 준건 인터넷이었다.

화장품을 팔고 돌아온 날 그녀는 그날 본 '꽃보다 더 아름다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건 다시 그녀에게 삶을 지탱할 더 큰 힘으로 돌아왔다. 책은 그 가상공간에서 갑남을녀들이 눈물 찍어내며 읽었던 정깊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행여 장터에서 이 착하고 끈질기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시거든 좌판에 펼쳐진 화장품 몇 개 말없이 사가지고 오시라. 거기서 인간의 아름다운 향기를 맡게 될 터이니." 도종환 시인의 추천사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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