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해방에서 환국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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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종황제의 국장은 3월3일로 정해졌는데 그날을 이틀앞둔 3월1일이 되자 우리 역사상 유명한 삼·일 독립운동이 터졌다. 당시 서울에는 인산(임금의 장례)을 구경하려고 경향 각지에서 유림이 모여들어 거리에는 백립을 쓴 사람들이 가득하였으며(예전에는 국상때 흰갓을 쓰는 법이다) 남녀 학생들이 부른 짖는 『대한독립만세…』소리와 고종황제의 승하(임금의 죽음)을 조상하는 울음소리가 서로 어울려서 서울장안이 떠나가는 듯 하였다. 그리하여 거리의 이곳 저곳에서는 맨주먹으로 그저 만세만 부르는 학생들을 일본 헌병이 치고 때려서 소요는 더욱 더 커갈 뿐이었다.
『독립만세!』의 우렁찬 소리는 자연 덕수궁안에도 들려와 고종황제의 영구를 모시고 섰던 순종황제와 영친왕을 위시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더한층 슬프게 하였으며 순진한 상궁들은 정말 독립이 된 줄로 알고 더욱 고종황제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상감마마께서 살아계셨으면 독립이 된 것을 아셨을 것을…』하고 상궁들이 안타까와 하는 것을 보고 영친왕도 마음속으로 『정말 독립이 됐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하고 다시 한번 아버님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영친왕의 일본 유학이 결정되었을 때의 일인데 하루는 함령전으로 아바마마를 뵈오러 들어갔더니 마침 무엇을 쓰고 계시던 황제는 『아기야. 너 이런 글귀를 아느냐?』고 하시며 일부러 다음과 같은 문구를 손수 써서 보이신다.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악이악
즉 천하의 걱정은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낙은 나중에 즐긴다는 뜻인데 다시 말하면 남의 제왕이 되는 사람은 백성의 걱정은 백성보다 먼저 걱정하고 백성의 즐거움은 백성보다 나중에 즐겨야 한다는 교훈이다.
영친왕이 그 글의 뜻을 대강 해명해 올리니 고종황제는 인자한 눈에 대견한 표정으로 태자를 모시며 『일본에 가거든 아무리 곤란한 일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꾹 참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고 모필로 커다랗게 참을 인자를 한자 써주셨다. 아닌게 아니라 고종황제는 명성황후가 일본 놈들의 칼에 맞아 비참한 죽음을 한 뒤부터는 정말로 일본사람이 무서웠다.
저희 말을 듣지않는다고 해서 밤중에 궁중으로 들어와 남의 황후에게 칼질을 하고 시체에다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서 한줌의 재로 만드는 위인들이니 무슨 짓인들 못할 일이 있으랴? 그래서 고종황제는 임시 아라사(노서아)영사관으로 피신하여 거기서 정무를 본 일까지 있었으며, 어느 시기까지는 소위 면종복배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일본으로 떠나가는 나어린 영친왕에 대해서도 때가 오기까지는 그저 참으라고 신신당부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종황제는 그 때를 기다리다 못하여 제2의 해아밀사사건을 계획하다가 결국 명성황후의 최후와 같이 역시 비명횡사를 하고 영친왕의 생모 엄비는 아들이 보고싶어서 노심초사끝에 혼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얼마나 야릇한 운명이냐? 영친왕은 그 모든 일을 생각하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러나 한가지 시원한 것은 어머님의 장의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 와서도 실컷 울어서 마음속에 쌓이고 쌓였던 슬픔과 괴로움을 다 털어놓은 것이었다.
영친황은 천성이 온후하고 인자한 성격인데다가 아버님의 교훈으로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좀처럼 얼굴에 나타내지를 않았다. 기쁠 때에는 약간 미소를 띄고 슬플 때에는 억지로 참고있다가 아무도 없는 밤중에 자리속에서 혼자 우는 고독한 성격이 제2의 천성처럼 되었다. 어머님의 부고를 받고도 그랬고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전보를 받고도 그랬다.
그렇지만 초종때에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도 터놓고 실컷 울 수가 있는 것이 마음에 후련하였다.
고종황제의 국장이 끝난후 영친왕은 여러 가지 감회를 품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바로 그 무렵에 동경 이본궁가에서는 영친왕과의 혼사에 대해서 몹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방자왕녀의 부친 수정왕은 처음 교섭을 받았을 때 『황태자비의 후보까지된 내 딸을 어찌 조선사람에게 줄까보냐』라는 생각에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차차 듣고보니 신랑감이 훌륭할뿐더러 『그저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권고에 못 이겨서 겨우 승낙을 한 것인데 고종황제가 승하하고 이어서 곧 조선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니 그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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