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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만 잡으면 발현되는 공격적 본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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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때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서 영문도 모르는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운전하면서 알게 됐다. 20여 년 전 초보운전자 시절, 좁은 도로로 천천히 차를 몰던 중이었는데 인도를 걸어가던 웬 남자가 뛰어와 차 문짝을 걷어찼다. 이건 시작이었다. 대로에서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던 중에도 한 남자가 차선을 두 개나 건너와 내 차에 발길질을 해댄 적도 있다. ‘어디 여자가 운전을…’이라는 욕이 이어졌다. 최악의 경험은 2차로에서 1차로로 좁아진 길에서 일어났다. 1차로로 접어들자마자 뒤따라오던 택시가 ‘쌩~’ 하고 중앙차선을 넘어가 내 앞으로 끼어들더니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 간신히 추돌을 피했는데, 이 기사는 그 후에도 급정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당시 흔치 않았던 여성 운전자는 사냥감이다시피 했다. 이렇게 일찍이 폭력적 운전문화에 단련돼 방어운전을 제일 원칙으로 하는 터라 도로에서 나를 앞서고자 하면 누구든 다 들여보내준다. 그들의 원시적 공격본능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실제로 선량한 남자도 운전대만 잡으면 원시수렵시대 사냥감을 쫓던 공격적 DNA가 발현한다는 등 운전과 공격성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은 많다.

 그러더니 ‘헐~’. 이젠 고속도로에서 차로변경 문제로 다투다 1차로에서 급정거하며 뒤차를 막아선 운전자도 나왔다. 그 바람에 5중 추돌사고가 일어나고, 애꿎은 트럭운전자가 사망했다. 지난 7일 중부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추돌사고 얘기다. 고속도로상의 ‘레이스’나 ‘위협 운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속도로상 차로 다툼과 위협 운전으로 연간 30여 명씩 사망할 정도다. 그래도 1차로에 급정거하고 시비를 거는 ‘호전적’인 운전자는 흔치 않은 일이어서 공분을 일으키며 ‘무조건 엄벌’ 요구가 드높았다. 한데 입건하고 보니 엄벌할 만한 법적 근거가 약하단다. 크게 써봐야 5년 이하 금고형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정도를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사법당국에서 나오는 얘기다.

 이에 사망사고까지 낸 운전자를 살인에 준해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자동차는 자칫하면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이런 치명적 기계를 다루면서 이성적 통제능력을 상실하고 공격성과 전투욕으로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운전자들이 너무 많은 데 대한 분노까지 보태진 반응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집중해도 교통사고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무조건 엄벌주의 요구는 불합리하다. 하나 운전은 다른 행위보다 공격성 제어가 힘든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운전자의 비상식과 과도한 폭력성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정도의 엄벌주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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