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산머루 와인 '엠퍼리' 세계 명주 반열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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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소백산 자락에 자리잡은 해발 5백m의 생달마을. 경북 봉화읍에서 자동차로 40분을 들어가야 하는 50여호가 모여 있는 두메마을이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넓다란 산머루 과수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과수원의 한가운데 '에덴의 동쪽'이란 현대식 건물이 있다. 프랑스나 스페인 등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맞먹는 '엠퍼리'란 산머루 와인이 나오는 곳이다.

몇년 전부터 와인 맛을 아는 국내 호사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98년 첫선을 보인 이 와인은 지난해 4만여병(1병 750㎖)쯤을 팔아 1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추석.설 등 명절 때는 없어서 못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와인 맛을 아는 일본에도 수출, 지난해만 2만달러어치 수익을 올렸다. 일본에서도 한병에 5천엔을 받아 프랑스 등 세계의 고급 와인과 대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게 이 술을 빚는 노종구(盧鍾九.59)씨 부부의 전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는 지난해부터 2년째 이 와인을 자신들이 발행하는 '세계의 명주사전'에 등재했다. 한국 술로는 유일하다. 취재를 위해 일본에서 이곳까지 찾아왔을 정도다.

지난달 18일엔 호주의 와인전문가가 동료 6명과 같이 이곳을 찾았다. '소더비 와인대백과'등재를 앞두고 농사법과 토질.기후 등 23가지 평가항목을 실사하기 위해서였다. 봉화 와인이 세계의 명주 대열에 당당히 들어간 것이다.

일본과 호주 전문가들은 이 와인이 포도로 만들어지는 기존 와인이 따라갈 수 없는 '자연이 살아 있는 맛'이라고 평한다. 오전약수에다 청정지역에서 자란 산머루가 독특한 향을 낸다. 산머루의 약리기능도 강점이다.

盧씨 부부가 한평생 술을 연구해온 것은 아니다. 숨 막히는 서울 생활과 문명이 싫어 10년 전 전국을 훑은 끝에 이곳에 정착한 전원주의자들일 뿐이다.

처음엔 사과농사를 지었다. 농약을 치는 것이 싫어질 때쯤 우연히 과수원 가운데서 탐스럽게 익은 산머루를 발견했다. 그걸로 술을 담은 것이 첫 인연이었다.

2년여의 연구과정에서 들인 돈도 자그마치 7억원이나 됐다. 성공하는 길은 일본시장을 뚫는 것이라 판단하고 오사카 식품박람회에 출품했다. 박람회 첫날은 거들떠보는 이 하나 없었다.

둘째날 운 좋게도 한 여성이 시음을 하더니만 생산량 등을 꼬치꼬치 캐묻더란 것. 지금의 일본 바이어다.

봉화군은 '엠퍼리'의 성공에 고무돼 지역에 1백㏊에 달하는 대규모 산머루단지를 조성, 농가소득을 올리게 한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봉화=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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