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공천 안 하면 후보 난립, 변별력 더 없어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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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14면

최정동 기자

새누리당 정우택(60·3선·충북 청주 상당ㆍ사진) 최고위원은 지난달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정당공천제 폐지 재검토’를 주장했다. 검증되지 않은 후보가 난립하고 인지도 차이로 현역과 지역 토호 세력만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 내천(정당이 공천하진 않아도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영향력 행사)과 비리 가능성, 정치적 표현의 자유 위축으로 인한 위헌 논란도 들었다. 정 최고위원은 관료 출신으로 충북지사(2006~2010년)를 지냈다.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공천제를 폐지해 버리면 더 큰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국회의원 3인 지상토론 -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

-더 큰 후유증이란 뭔가.
“정당 공천을 안 하면 후보가 난립하고, 변별력이 더 없어진다. 대만에선 후보가 20∼30명씩 나오는데 자신을 알리려고 배트맨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도 자신을 각인시키려고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만 유리해질 수 있다. 요새 정치 신인 중엔 ‘과거엔 당 공천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는데 앞으로 이름을 알릴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는 이가 많다. 공천제를 없애면 시민단체가 선거에 관여할 여지도 커질 거다. 현행 정당공천제의 문제를 개선해야지 아예 없애는 건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거다.”

-어떻게 개선하자는 건가.
“공천을 투명하게 하면 된다. 지구당 위원장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당원과 외부 인사로 위원회를 꾸려 상향식 공천을 하는 거다. 금품수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적발되면 다음 공천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있다.”

-공천제 폐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데.
“물론 여당으로서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부담이 있다. 하지만 대선 공약도 총의를 모아 수정할 수 있다. 사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은 심도 깊은 논의 끝에 나온 게 아니라 조급하게 만들어졌다. 대선 공약이란 이유로 새누리당이 지난 4·24 재·보선 때 기초의원 정당공천을 하지 않았지만 당시엔 공천을 할지 말지 판단이 늦어져 공천할 시간 자체가 없었다. 또 주로 (새누리당이 강한) 영남 지역이어서 공천 여부가 큰 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수도권과 중부권은 정당공천이 중요한 만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중하게 논의돼야 한다.”

-민주당 당론은 공천제 폐지인데.
“민주당은 공천제를 폐지하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는 계산을 했을 거다. 현재 수도권과 충청권 기초단체장 중엔 민주당 소속이 많다. 서울 지역 구청장 24명 중 19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정당공천이 없어져도 민주당은 현역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다. 공천제를 폐지하면 쇄신이고, 공천제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개선하면 쇄신이 아니라고 봐선 안 된다.”

-세간의 여론은 공천제 폐지 찬성 쪽인데.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기존 공천제의 폐해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천제 폐지 이후 발생할 문제를 알려야 한다. 공무원 생활을 해보니 100% 좋은 제도와 정책은 없더라. 혜택을 보는 사람이 많은 정책을 가급적 택해야 한다. 여론에 떠밀려 정당공천제 폐지를 찬성하는 건 정치 하는 사람으로서 정치 소신과 철학에 어긋난다.”

-기초의원 공천만 폐지하거나 한시적으로 폐지하자는 의견은 어떻게 보나.
“그런 대안은 모두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장기적으로 지방자치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심도 있게 논의한 뒤에 결정해야 한다. 토론회 등을 통해 국민 여론도 반영해야 한다.”

-새누리당 당론은 언제 나올까.
“새누리당에선 대선 공약이란 굴레 때문에 진지한 논의가 없었다. 최근 당 회의 때 보니 당 지도부의 대다수가 공천제 폐지에 부정적이더라. 하지만 당론은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와 당 사무처 등을 통해 심도 있게 연구하고 원외위원장들이 모인 연석회의, 의원총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9월 국회부터 여야 논의를 시작하되 내년 초까지 논의가 지속될 수도 있다. 청와대도 한 걸음 뒤에서 당론 결정과 여야 타협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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