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를 믿기에는 아직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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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이 추가적인 회계 부정 적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맞다. 절망의 6월을 보낸 뒤 증시는 반등했다. 그리고 8월 14일이 시장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8월 14일은 SEC가 미국 8백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 재무제표의 정확성을 인증하라고 요구한 시한이었다.

그리고 화요일(현지시간) SEC는 인증을 이행해야 하는 기업의 대상을 상장 기업 대부분으로 확대하는 규정을 승인했다. SEC는 또 기업의 연례 및 분기 보고서 제출 시한을 단축하고 내부자가 주식을 매매할 때는 평일 기준으로 이틀 내에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데 동의했다.

이 조치들은 모두 의회가 새로 제정한 기업 개혁법 사바네스-옥슬리 법안에 포함됐다.

낙관론자들은 CEO와 CFO들이 자사의 실적 발표가 정확하다고 맹세하고 이를 정확한 기한 내에 제출할 의향이 있다면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8월 14일은 왔다. 실적을 크게 수정한 기업은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진 것일까?

부정을 막기 위한 법은 원래 있었다
위증이란 단어를 들어봤는가? 진실을 말하기로 맹세하는 것과 진실을 말하는 것은 다르다. 나를 거짓말 탐지기 앞에 묶어놓아보라. 내가 나부끼는 금발과 깊고 푸른 눈을 가진 남자 슈퍼모델급 외모의 소유자라고 정직한 얼굴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은 첫화면에 나와있는 나의 불쾌한 생김새를 잠깐만 보면 금방 내 말이 뻔뻔스런 거짓말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수익 보고서에서 중요한 것은 제출 시점이 아니라 보고서의 내용이다. 수치들이 가짜라면 기업들이 분기가 끝난 뒤 45일 내에 제출하든 35일 안에 제출하든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엔론과 월드콤이 저지른 유형의 회계 부정을 강력히 저지하는 법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재무제표 상에 70억 달러의 이익을 허위 기재하고 수십억 달러의 부채를 은폐하는 행동은 어느날 갑자기 범죄가 된 것이 아니다. 기업들은 근본적으로 수치를 조작해야 하는 끔찍한 기업 환경에 노출돼 있었고 단지 필연적인 파국을 지연시켜왔을 뿐이다.

톰슨플럼그로스(TPG) 펀드의 존 C. 톰슨 펀드매니저는 "월드콤이 정직했다면 더 빨리 파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톰슨은 "모든 것이 밝혀질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통신 산업(수십 개의 소규모 신규 기업들뿐 아니라 글로벌크로싱과 퀘스트까지 수렁에 빠뜨린)의 붕괴는 1990년대 초의 저축 및 대출 위기보다 더 위험한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뢰는 서서히 회복된다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진짜 요소는 법이나 SEC의 규정 변경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이다.

올해 초 엔론의 타락은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월스트리트 관측통들은 여름이면 투자자들이 더 이상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6월 월드콤에서 엔론보다 훨씬 충격적인 회계 부정이 밝혀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문제는 회계 부정 사태가 언제 확실히 끝날지 예상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멀렌캄프펀드의 론 멀렌캄프 펀드매니저는 "호황기에 이은 기업 부정 사태는 흔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더 이상 발생할 재앙이 없다고 확신하는 데에는 6-9개월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멀렌캄프는 "과거를 통해 기업의 2-3%가 부정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며 "거품을 빼는 데에는 세월이 약"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분석센터(CFRA)의 하워드 쉴리트 소장은 "과거의 비행들이 추가로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엔론이나 월드콤의 붕괴만큼 규모가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에 저지른 회계 부정 때문에 수익 수치를 조정해야하는 기업들은 더 있을 것으로 본다.

간단히 말해 회계를 교묘히 조작한 기업들은 호황기에 높은 주가를 기록했다. 이것은 그 기업들의 경영자들이 큰 보수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단체 공정경제연합(UFE)과 연구기관 정책연구협회(IPS)가 8월 26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회계 부정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23개 기업(엔론 월드콤 타이코 AOL타임워너-CNN/머니의 모기업- 포함)의 CEO들이 1999-2001년에 받은 보수는 비지니스위크의 연봉 조사 대상 기업들의 CEO들보다 70% 많았다.

기업 부정 관련자들(기업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협력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의 애널리스트와 간부들도 포함된다)이 모두 적발돼 엄벌을 받는다는 것이 분명해질 때까지 투자자들의 불신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수요일에 있었던 스코트 설리반 전 월드콤 CFO와 버포드 예이츠 전 회계책임자 기소는 옮은 방향으로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쉴리트는 "경영자들을 상대로 형사 처벌뿐 아니라 부정한 행동으로 얻은 이득의 환수도 병행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가장 적극적으로 부정을 저지른 기업의 고위 간부들은 가장 많은 이득을 봤다. 우리는 이들에게 세상은 변했으며 이제 회계 부정을 저지른다면 분명히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Paul R. La Monica, CNN/Money Staff Writer
이인규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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