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음악|본능의 리듬 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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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즈는 세계의 음악이 된 느낌입니다. 미국의 달러처럼 재즈는 세계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백화점 앞에는 루블화를 외국 여행객의 달러로 바꾸려는 소련의 젊은이들이 서성거리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마는, 공산권의 젊은이들도 달러가 필요하듯 재즈에 미치는 모양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재즈 옹호론을 편 사람은 클래식의 음악가인 홍난파씨였읍니다.
지휘의 우상이 된 토스카니니는 연주회가 끝나면 재즈로 몸을 풀었고, 재즈음악의 천재 거쉬윈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우리 나라를 방문한바있는 명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도 재즈의 애호가로 알려지고 있읍니다. 재즈는 젊은이의 것일 뿐 아니라 젊음을 잃지 않는 만인의 것이라고 하겠읍니다.
재즈는 원시본능과 직결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재즈가 개구장이의 습성을 갖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생리부터가 그렇고, 행진곡처럼 규칙적이 아닌 빗나가기만 하는 싱커페이션의 리듬이 그렇습니다. 드럼이나 피아노의 화음주가 추는 충격적인 퍼거션(충격타), 음악적이라기보다는 절규나 신음소리에 가까운 조야한 톤·칼라(음색), 약속된 진행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즉흥연주, 재즈를 특징짓는 이런 기법들은 그대로 개구장이의 습성이라고 하겠읍니다.
동심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산토끼』나 『반짝 반짝 빛난 별』을 부를 수 없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재즈는 어쩌면 마음의 고향인지도 모릅니다.
단색렌즈로 인생을 볼 수 없게된 현대인에게 현실을 거부하는 포즈로 원시본능을 자극하는 재즈는 잠시나마 그들을 개구장이로 돌아가게 합니다.
뇌의 활동을 휴식케 하고 본능의 리듬을 몸으로 쾌감하게 합니다.
현실을 환상의 세계로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본능으로 환원시켜서 터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재즈는 본능적인 절망과 저항을 삼키면서 자라온 곡절 많은 역사를 지녔읍니다.
재즈의 기원을 아프리카 흑인의 북소리에서 찾는 것은 상식으로 되어 있읍니다마는 재즈의 역정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아프리카 흑인의 북이 원시본능의 리듬을 재즈에 제공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재즈가 인류의 재산이 될 만큼 내용을 담을 수 있게 된 것은 미국에 정착하게 된 흑인노예들의 인생입니다.
남부로 팔려온 흑인노예들의 노래와 춤은 절실한 삶의 기도였습니다. 일하는 동물로서 육체만이 자본인 그들은 노래와 춤으로 삶을 다짐했읍니다.
슬픔도 기쁨도 심각하고 소중한 것이었읍니다. 감상취미는 끼어 들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뉴올린즈의 흑인노예들은 이를테면 음악적 환경이 좋았읍니다.
일찌기 스페인과 프랑스의 도시였던 뉴올린즈는 여러 종류의 음악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오페라·하우스와 취주악단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읍니다.
가난하지만 귀가 밝은 흑인노예들은 어깨 너머로 이들의, 음악에서 자양분을 섭취했읍니다.
뉴올린즈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재즈의 발상지로 꼽히게 되었읍니다.
재즈가 국제어로 적용될 바탕이 여기서 마련된 셈입니다.
재즈가 아무리 본능적인 절망과 저항을 삼키고 있다손 치더라도 표현이 뒤따르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위세는 떨칠 수 없었겠지요.
현대인이 작은 나사못으로 왜소화할수록 잠시나마 개구장이가 될 수 있는 재즈의 매력은 증대하기만 할 것 같습니다. <박용구(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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