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동 청계천변에 큰불 판잣집3백10동 전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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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2일 밤11시50분쯤 서울동대문구 용두동 255의42 청계천변에 있는 이경우씨(27)의 마대창고에서 불이나 판잣집 3백10동이 전소, 7백50가구 3천5백여명의 이재민을 내고 1시간30분만에 꺼졌다. 이날 불길은 건조한 날씨에 초속8m의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이웃 판잣집으로 번져, 청계천변의 판자마을이 불바다를 이루었으며 불길을 피해 집을 뛰어나오던 김기식씨(58·20통8반)가 아우성치며 밀려나온 대피인파의 발길에 밟혀 숨지고 김동수씨(23·20통6반) 등 4명이 화상을 입었다. 이날 밤 처음 불길을 본 백증녀씨(39·여·20통7반)는 그의 집에서 10m가량 떨어진 이씨 집 마대창고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아 올라 『불이야!』하고 고함을 질렀으나 금방 이웃 판잣집에 불길이 번졌으며 발화 10분만에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판잣집 30여 동이 불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날 주말을 맞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별안간 휩쓴 불길에 가재도구를 건져낼 사이도 없이 폭2m의 좁은 골목길로 몰려나와 청계천의 물 속으로 대피하는 등 화재현장은 수라장이 됐다.
경찰은 소방차 40대와 소방관 1백15명 및 기동경찰 2백50명을 풀어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소방도로가 전혀 없어 현장에 접근 할 수 없는 데다 골목길을 몰려나오는 대피 주민들 때문에 소방호스를 불길에 댈 수 없어 불길을 바로 잡지 못했다.
이날 모두 베니어 판자벽과 루핑 지붕으로 된 판잣집은 먼저19통의 7개반 1백10채, 20통의 6개반 1백50채, 18통의 3개반 50채동이 차례로 불에 휩쓸려 폭50m, 길이 3백m의 폐허를 만들었다.
그나마 일부 주민들은 옷 보따리와 가구를 한가지라도 더 꺼내려고 아우성을 쳤으며 꺼낸 가재도구를 청계천 바닥과 멀리 떨어진 길 위에 쌓아놓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경찰은 이재민들을 이웃 용석국민학교 교실에 수용, 구호작업에 나섰으나 13일 대부분의 이재민들이 아침밥을 굶는 등 구호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에 앞서 용두국민학교측에 이재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교실을 비워 달라고 요청했으나 학교측은 책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13일 새벽 3시30분까지 비워주지 않아 물에 빠진 어린이 등 이재민들이 추위에 오돌오돌 떠는 사태 마저 빚었다. 이곳 이재민들은 대부분 호남지방의 이농민들로서 청개천 바닥과 둑을 허물어 판잣집을 짓고 헌마대를 수리하고 종이봉투를 붙이거나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왔다.
경찰은 이날 밤 불로 동산피해 75만원, 부동산피해 3백75만원 등 피해액을 4백50만원으로 보고 있으나 주민들은 적어도 1천5백만원이 된다고 주장하고있다.
경찰은 불이 처음 20통7반 이경우씨집 마대창고에서 불길이 솟았다는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불난 후 행방을 감춘 이씨를 수배하고 이씨집 연탄아궁이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자세한 화인을 조사하고 있다

<죽은 김씨는 환자 대피주민에 밟혀>
대피 주민들의 발길에 밟혀죽은 김기식씨는 지병인 고혈압으로 10일 전에 성바오로병원에 입원, 치료받다가 이날 밤8시쯤 퇴원했다.
김씨는 불길이 번지자 가재를 꺼낼 생각도 못하고 부인 윤동화씨(37)의 부축을 받아 골목길을 나오다 밀려 넘어졌다. 깜깜한 밤중에 한꺼번에 몰리는 주민들은 김씨의 온몸을 짓밟으면서 지나갔다.
윤씨가 『사람이 깔렸다』고 소리쳐도 막무가내. 겨우 일으켜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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