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 낙찰가 속출 … 깡통전세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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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사는 김모(44)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지난해 말 경매에 넘어간 전셋집이 계속 유찰되더니 최근 입찰 하한선인 최저경매가격이 전셋값 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김씨는 1순위 채권자지만 만일 최저경매가격 수준에서 낙찰되면 전셋값 일부를 떼이게 된다. 그는 “전셋값을 지키기 위해 직접 입찰에 참가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법원경매시장에선 최저경매가격이 전셋값을 밑도는 물건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몇 년 새 집값은 내리고, 전셋값은 오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최저경매가격은 물론 낙찰가격이 전셋값도 안 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어 세입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13일 법원경매정보회사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최저경매가격이 전셋값보다 적은 물건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375건 나왔다. 2009년 같은 기간엔 이런 물건이 9건에 불과했으나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33건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 고양시 69건, 파주시 25건, 용인시 18건, 인천 남동구 20건 등 미분양 물량이 많아 주택 거래가 부진했던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서울은 50건으로 조사됐다. 하유정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지만 집값과 경매 낙찰가격이 약세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수도권 주택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지난 6월 77.1%에 달했으나 지난달 말엔 75%로 떨어졌다.

 경매 물건이 최저경매가격 수준에서 낙찰되면 세입자는 1순위 채권자라도 전셋값 일부를 못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6월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의 한 아파트는 전셋값 9500만원보다 낮은 7424만원에 경매가 시작돼 결국 전셋값에 못 미치는 9100만원에 낙찰됐다.

 같은 달 인천 강화군에서 경매에 부쳐진 한 연립주택도 전셋값 7000만원보다 적은 6600만원에 팔렸다. 이 주택의 최저경매가격은 5800만원이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그동안 전셋값을 안전자산으로 여기는 ‘전세 불감증’이 팽배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며 “확정일자를 받는 것은 물론 전세보증보험 등 세입자 스스로 전셋값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셋값이 계속 강세를 보이고 있어 당분간 이 같은 경매 물건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다음 달에도 전셋값보다 최저경매가격이 낮은 100여 건이 경매에 부쳐진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한신아파트 84㎡형(이하 전용면적)은 전셋값이 2억500만원이지만 최저경매가격은 1억9840만원에 불과하다. 거듭된 유찰로 최저경매가격이 감정가 3억1000만원의 64%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의 대월마을 주공아파트 59㎡형은 최저경매가격이 전셋값 수준인 1억6000만원 선이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이 같은 경매 물건은 반대로 전셋값보다 싸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도 된다”며 “해당 주택의 세입자거나 실수요자라면 이런 물건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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