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도 防災시스템 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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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인천 지하철도 방재 기준이 허술해 화재 등 비상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지하철이 1974년 처음 등장했지만 지하철 내장재 안전기준은 24년 뒤에야 처음 만들어졌고, 화재시 내장재의 유독가스 허용 기준은 아예 없다.

19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전동차량 내 내장재에 대한 안전기준'은 98년 마련됐으나 대구 참사를 빚은 전동차는 한 해 전인 97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운행 중인 전동차 대부분이 98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제2의 지하철 참사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교부의 '주요 국가별 전동차 설비품 규격 비교'에 따르면 프랑스.영국은 전동차 내장재의 경우 유해가스.연기의 독성과 전파 경로를 따지는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내장재가 불에 타면서 유해가스가 나오더라도 15분 동안 폐에 손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한국은 내장재가 뿜어내는 유독가스에 대한 측정 기준이 없고 유독가스 성분을 시험하는 전문기관도 없다. 건교부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95년 당시 전동차 실내설비 화재방재 기준은 KS규정에 의한 난연성(難燃性.불에 타기 어려운 성질) 시험수준에 머물렀고 유독가스나 연기밀도 등에 대한 안전기준은 없었다.

비상시에 연기와 유독가스를 빼내고 신선한 외부 공기를 불어넣는 제연(除燃)설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지하철 1~4호선 95개 역 가운데 제연시설은 36곳에만 설치돼 있고, 74년 건설된 1호선에는 하나도 없다. 반면 서울 지하철 노선이 중복되면서 역사는 땅 밑 30~40m까지 깊어졌고, 8호선 남한산성역은 지하 60m에 위치해 화재발생시 연기와 유독가스로 대형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된다.

비상시 전동차 기관사의 위기대응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도 부실하다. 서울지하철공사의 경우 기관사에 대한 보수교육을 5년에 한차례 2주 동안 실시할 뿐이다. 지하철공사 배일도 노조위원장은 "예전에는 기관사를 4개월 동안 교육한 뒤 투입했으나 최근 인력절감 차원에서 보수교육 기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지하철 사고대책본부는 19일 현재 이번 사고로 53명이 숨지고 시신 72구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또 1백46명이 부상했으며 3백7명이 실종 신고됐다고 발표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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