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흔들흔들 더프너, 승부엔 흔들리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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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챔피언십에서 10언더파로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제이슨 더프너가 우승 트로피를 올려다보고 있다. [로체스터(뉴욕) 로이터=뉴시스]

15번 홀. 작은 호수가 그린 앞과 오른쪽을 감싼 내리막 파 3홀이다. 선두로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선 제이슨 더프너(36·미국)는 이 홀을 보며 2년 전의 자신을 기억해냈다. 2011년 8월 14일 애틀랜타 애틀래틱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PGA 챔피언십 마지막 날에도 그는 선두로 15번 홀에 올라왔다. 올해 PGA 챔피언십이 열린 오크힐 골프장 15번 홀처럼 그린 앞과 오른쪽에 호수가 있는 파 3홀이었다.

 골프장의 호수는 불안한 골퍼의 마음과 공을 잡아챈다. 더프너는 당시 티샷을 물에 빠뜨렸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는 이후 두 홀에서도 보기를 했고 연장 끝에 키건 브래들리(미국)에게 패했다.

 더프너가 2년 전의 악몽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두 궁금해했다. 상황은 2년 전보다 더 나빴다. 2년 전엔 4타 앞섰지만 이날 더프너의 리드는 2타였다. 핀의 위치도 얄궂었다. 대회 주최 측은 팬들과 소통한다면서 마지막 라운드 15번 홀의 핀 위치를 인터넷 투표에 부쳤다. 팬들은 짓궂게도 물 바로 옆에 핀 위치를 잡았다.

 더프너는 매력적인 선수는 아니다. 이름부터 그렇다. ‘duffer’는 얼간이 혹은 형편없는 골퍼라는 뜻이다. 불룩 나온 배에 늘어진 턱살, 투어 프로답지 않은 민망한 웨글(스윙 전에 골프채를 좌우로 흔드는 것)에 씹는 담배를 질겅거린다. 이날 우승 경쟁을 한 애덤 스콧(호주)과 대칭을 이루는 비호감 선수다. 지난봄 그가 어린이 행사에 참가해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진도 그랬다. 더프너의 그 표정이 너무 우스워 루크 도널드(잉글랜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미셸 위 등이 패러디했다.

 웨글 때문에 보기엔 멋지지 않아도 더프너의 스윙은 완벽에 가깝다. 그는 2라운드에서 메이저대회 최저타 타이인 63타를 기록했다. 4라운드에서도 14번의 드라이브샷 중 9번을 페어웨이에 적중시켰다. 15번 홀에서도 그는 2년 전의 악몽을 이겨냈다. 물을 피해 핀 왼쪽으로 멋진 티샷을 날렸고 파에 성공했다.

 결국 더프너는 12일(한국시간) 열린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2언더파 68타를 기록, 합계 10언더파로 우승했다. 그의 첫 메이저 우승이다. 더프너는 오크 힐(참나무 언덕) 골프장에 있는 도토리와 묘목을 집에 가져다 심기로 했다. 그의 부인 아만다는 “20~30년 후 자라난 참나무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2013년의 얘기를 해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타이거 우즈(38·미국)는 4오버파 40위에 그쳤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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