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JAL기 납치사건의 열쇠는 「인도주의」에 있다. 해결의 「이니시어티브」를 오로지 범인들에게만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부터가 인도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답보상태는 세가지의 인도주의를 빚어냈다. 선량한 자유민을 북괴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이 한국측의 인도주의적 입장이다. 일본은 차라리 명쾌한 담판을 내리지도 못할 바에는 북괴로 보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인상을 풍긴다. 물론 그들은 이것을 인도주의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나머지 하나는 북괴의 인도주의이다. 외신에 따르면 북괴는 JAL기를 맞으면 인도주의적으로 처리한다는 주장을 한 것 같다.
만일 이 세가지의 인도주의가 똑같은 동기의 발상이라면 벌써 「드라마」는 끝이 났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북괴의 『인도주의』 운운은 당치도 않다. 한국의 KAL기는 비인도주의적으로, 그러나 일본의 JAL기는 인도주의적으로 처리한다는 그것부터 모순이다. 게다가 이들은 승객을 「모스크바」경유로 송환한다고 말한다. 적절한 인도주의는 이런 경우, 자유민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억압된 자유」는 실로 「휴머니즘」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일본의 인도주의도 모호하다. 엄연히 분단국의 현실을 보면서 더구나 주권국의 입장과 「프레스티지」(prestige)를 무시하면서 다만 「감상적인 인도주의」만을 고집하는 것은 안될 말이다. 이런 「에고이스틱」한 인도주의는 그 본연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은 한국에 얼마나 「인류공존의 인도」를 베풀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봄직도 하다.
한국의 인도주의는 다만 「정치적 이해」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선량한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범인들의 행동은 결코 구속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휴머니즘」은 모든 가치에 우월하여 인간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칸트」의 『인간성의 철학』, 「루소」나 「볼테르」의 『개인주의적인 인권의 주장』, 「톨스토이」「로망·롤랑」의 『인류의 근원적인 생명에의 감격』, 장자의 『인간의 절대자유·평등』사상, 동양적인 대인풍의 유현한 사상은 모두 「휴머니즘」에 통한다. 같은 동양권, 또한 같은 문화권의 이웃에서 이처럼 「인도주의」의 정신이 「델리키트」한 「뉘앙스」를 달리하는 것은 어딘지 쓸쓸한 고소마저 자아낸다.
우리는 다만 최후순간까지 우리의 최선과 성의를 다함으로써 스스로의 긍지와 국민적인 인격을 높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