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매미가 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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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30면

여름은 온통 외설이다. 아침부터 발기한 몸, 몸, 몸들이 하자고, 짝짓기를 하자고 보챈다.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모르는 욕망들이 떼지어, 무리 지어 전율한다.

매미가 운다. 운다. 일요일 새벽부터 마흔 살 독신 서태웅씨 창 방충망에 붙어 매미가 운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운다. 태웅씨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매미는 마치 잠의 고막을 찢을 것처럼 운다.

태웅씨는 독신주의자가 아니다. 어쩌다 그만 마흔이 되고 독신으로 지내고 있을 뿐이다. 사십을 두고 불혹이라 한 공자님 말씀은 옳다. 사십은 불혹. 어지간해선 마음이 혹하지 않는다. 모든 게 귀찮고 번거롭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매미가 왜 우는지 태웅씨도 안다. 우는 매미는 수컷이다. 매미는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땅속에서 5년, 7년을 혹은 17년을 기다린다. 어떤 가설에 따르면 매미의 수명은 5년, 7년, 11년, 13년, 17년 등으로 모두 소수인데 이것은 성충이 되었을 때 천적을 피하기 위해 애벌레로 지내는 시간을 연장하는 쪽으로 진화해온 결과라고 한다. 꽤 오랜 기간을 땅속에서 지낸 매미의 유충은 성충이 되기 위해 지상에 나와서는 나무에 올라 마지막 탈피를 한 뒤 서둘러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죽는다. 그 기간이 고작 한 달 정도다.

몇 번인가 태웅씨도 연애를 했다. 그때는 이성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가지만 마음에 들어도 그것 때문에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지금은 모든 게 시들하다. 가슴은 사라지고 머리만 남았다. 한 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다. 쓴웃음을 짓는다. 오늘 모처럼 소개팅이 잡혀 있지만 소개팅은 하면 뭐하나 싶다. 커피는 마셔서 뭐하며 저녁은 먹어서 뭐하나. 어떤 여성이 나오든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의 여성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든다. 게다가 그 여성 역시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결말을 알고 보는 반전 영화 같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한여름, 한 달 내내 매미는 암컷을 찾아 운다. 매미의 울음을 암컷만 듣는 것은 아니다. 찌르레기, 박새, 제비, 사마귀, 땅강아지, 말벌, 여치 같은 매미의 천적도 듣는다. 수컷 매미의 울음을 듣고 무엇이 다가올지 모른다. 어쩌면 죽음과 삶이 한꺼번에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매미는 운다. 매미에게는 시간이 없다. 올여름처럼 장마가 길수록 수컷 매미는 마음이, 몸이, 울음이 바쁘다. 절박하다. 매미의 진짜 천적은 시간이다.

마흔은 불혹이 아니라 부록인지 모른다. 청춘의 부록. 어떤 부록은 본지보다 더 풍성하고 흥미진진하다. 아직 태웅씨의 청춘도 끝난 것이 아니다. 지나간 것도 아니다. 태웅씨는 자신이 울지 않는, ‘존재의 떨림’이 없는 매미였다고 생각한다. 그도 이제 온몸으로 울어야 하는지 모른다. 길 가는 여성이 마음에 들면 말이라도 한번 붙여보자. 당장 오늘 소개팅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애프터를 신청해야 한다. 하나라도 괜찮은 부분이 있다면. 거절당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모르고 우는 매미처럼 그도 한번 온몸으로 울어야 한다. 울어야 한다고, 짧고 뜨거운 여름, 마흔 살 태웅씨 창 방충망에 이른 아침부터 매미가 운다. 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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