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식어가는 덩샤오핑 추모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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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국 개혁.개방의 총 설계사'라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사망 6주년(19일)을 기념해 중국 전역의 6백개 영화관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덩샤오핑'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을 빼다 박은 듯 닮은 루치(盧奇)라는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중국 공산당과 鄧의 중점 지원으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광둥(廣東)성 정부 등이 나서서 영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각종 문헌 자료들을 총동원해 생전 鄧의 인간적인 면모, 중요한 정책 결정과정에서의 고뇌 등을 제대로 표현해 냈으며, 특히 그의 '영웅적 면모와 애국적 정서'가 깊이있게 묘사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제작에만 1년여의 시간이 걸리고 총 2천6백만위안(약 39억원)을 쏟아부은 이 영화는 최소 1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중국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18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1백여명의 중국 고위층 인사들이 참석해 鄧에 대한 중국 당.정의 식지않은 추모 열기를 과시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鄧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에 대해 "혹시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면 모를까 일부러 보러 가기는 좀 힘들다"는 반응이 많았다.

중국에서 鄧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의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온 갖가지 성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개혁.개방의 이면에 가려졌던 부작용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나날이 벌어지는 빈부 간 소득 격차, 상당기간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실업자와 휴직자 문제, 여전히 가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농촌 문제 등이다.

영화 '덩샤오핑'의 입장권은 15위안(약 2천1백원). 당국이 적극 밀어주는 영화인 만큼 단체관람 등으로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鄧을 추모하는 영화가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을지는 의문이다.

개혁.개방 20여년이 지난 오늘의 중국사회는 鄧이 남긴 '부(負)의 유산'을 솜씨있게 처리해 줄 지도자를 더 갈망하는 분위기다.

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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