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먹고, 헌 유니폼 입고 … 생고생 임창용 MLB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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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이 지난 5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의 체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타코마 레이니어스(시애틀 트리플A)와의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타코마(미국 워싱턴주)=김식 기자]

임창용(37·시카고 컵스)은 한 달 넘게 마이너리그 소속으로 미국 각지를 떠돌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재활훈련까지 포함하면 7개월째 유랑이다. 임창용은 옷맵시도 좋고 깔끔한 성격이다. 그런데 7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새카맣게 그을렸고, 유니폼은 헐렁했다. 이발과 면도도 꽤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연봉 4억 엔(약 46억원)까지 받았던 그는 지난해 7월 오른 팔꿈치 부상을 입었다. 수술을 받은 후라도 일본에서라면 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임창용은 일본에서 받은 연봉의 10분의 1 수준에 컵스와 계약하고 지난 2월 미국에 발을 내디뎠다. 최저 연봉에 사인하고 도전에 나섰다. 6월 말 미국 야구의 신인들이 뛰는 루키리그부터 시작한 그는 싱글A, 더블A를 거쳐 메이저리그 직전 단계인 트리플A(아이오와 컵스)까지 올라왔다. 타코마 레이니어스(시애틀 트리플A)의 홈구장 체니 스타디움에서 그를 만났다.

 -대체 면도는 얼마나 하지 않은 건가.

 “일주일쯤 된 것 같다. 두 달 전에 삭발한 뒤 두 달 넘게 이발을 하지 못했다. 이제 도시를 돌며 원정을 다니니까 이발을 해야지.”

 -‘눈물 젖은 햄버거’를 먹는다는 마이너리그 생활은 어떤가.

 “더블A까지 식빵에 햄을 넣어 먹었다. 트리플A에 올라오니 립(갈비)도 나오고 음식이 괜찮다. 2월부터 양식만 먹었다. 4월께 되니까 정말 토할 것 같았다. 지금은 원정 다니며 한국식당을 가니까 좋다.”

 -만 37세에 루키리그부터 시작했다.

 “거기 가니까 17세 선수도 있더라.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싱글A, 더블A, 트리플A까지 단계별로 다 뛰게 하더라. 이동이 워낙 많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새 유니폼을 입어본 적이 없다. 다른 선수들이 쓰던 중고 유니폼을 주고 팀을 떠나면 반납한다. 바지가 꽉 끼어 던질 때 다리가 올라가지 않은 적도 있다.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한 달여 동안 마이너리그를 다 겪은 거 아닌가. 나중엔 좋은 경험이자 추억이 될 것 같다.”

 -일본 생활이 그리울 것 같다.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대우를 받다가 팔꿈치 인대를 다쳤다. 재활훈련을 하고 일본에서 더 뛰었으면 편하긴 했을 거다. 그런데 부상에서 회복했을 때 내가 일본이 아닌 (꿈에 그리던) 미국에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전했다.”

 -트리플A에서 95마일까지 나왔다.

 “내가 일본에서 빠른 공을 던졌는데, 미국 오니까 공 빠르다고 못 한다. 여기엔 97~99마일 던지는 투수가 많다. 또 타자들은 그걸 받아친다.”

 -메이저리그가 가까워진 것 같다.

 “몸이 아직 100%는 아니다. 80~85% 정도? 트리플A에서도 항상 전력피칭을 한 건 아니다. 90마일 이하 직구가 더 많았다. 지금까지 실전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루빨리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서둘지 않겠다. 10년 이상 돌고 돌아 여기에 왔는데 며칠 서두른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임창용은 이르면 다음 주, 늦어도 이달 말에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전망이다. 시카고는 13일부터 추신수(31)가 뛰고 있는 신시내티와, 27일부터는 류현진(26)의 LA 다저스와 3연전을 벌인다. 후배들과의 맞대결에 대해 그는 “맞대결은 무슨…, 메이저리그에서는 내가 후배니 배워야 한다”며 웃었다.

타코마=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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