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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인 올림픽 3위 소리 없어도 너의 마음이 들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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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오래전 병원 취재를 할 때 암 환자와 가족의 정서 변화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통상 “그럴 리 없다”는 부정, “왜 하필 내가”라는 분노, “모든 게 싫다”는 우울을 거쳐 “그래도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타협의 단계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암 환자뿐만 아니고 자식의 문제를 알게 된 부모의 심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곁에서 지켜본 피붙이의 경우가 그랬으니까.

 아이가 두 돌이 지났는데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이웃 아주머니의 조심스러운 지적이 시작이었다. 아이 부모인 집안 어른은 그 소리를 듣고 “에이, 우리 딸이 설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길로 잘 본다는 이비인후과 순례에 들어갔지만 결국 현대 의학으론 치료가 어렵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만 들었을 뿐이다. 최종 진단을 받던 날, 아이 부모는 밤새 울음을 토했고 이후 상당 기간 집안에 그늘이 졌다. 타협 단계에 이르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아이는 보청기의 도움을 받으며 학교를 무사히 마쳤다.

 세월이 지난 뒤 혼처가 나타났다. 집안 어른이 신랑감을 따로 불러 조심스럽게 물어봤다고 한다. “불러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답답하거나 오해가 생길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겠나?”

 젊은 예비신랑이 대답했다. “한 번 불러서 돌아보지 않으면 두 번 부르고, 두 번 불러도 안 되면 세 번 부르고, 그래도 안 돌아보면 다가가서 눈앞에 서겠습니다. 결혼하면 식구인데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온 집안에 화색이 돌았다. ‘배려’나 ‘도움’같이 판에 박힌 소리를 하지 않았기에 더욱 믿음직했는지 모르겠다. 신랑감과 상견례를 하던 날, 조용히 갈비만 구워줬다. 긴 말이 필요 없었으니까.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4일까지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렸던 제22회 농아인 올림픽대회(Deaflympics)에서 한국 대표팀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금 19, 은 11, 동메달 12개 등 42개나 되는 메달을 땄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이들이 딴 메달 하나하나에는 물론, 참가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장편소설 같은 사연이 있지 않을까. 그 역사에 가족들도 함께했을 것이다. 뒤에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스포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뛸 수 있도록 기꺼이 그들의 눈앞으로 다가갔을 바로 그들 말이다.

 4년 전 대만 타이베이 대회에서도 한국 팀이 3위를 했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이런 대회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음 대회는 2017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다는데 그 이후에 한국이 이를 유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채인택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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