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풍토 개선의 포석|업무쇄신 8개 방안의 배경과 문젯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출을 보다 건전케하고 대출자금의 유용을 방지하며, 기한내 상환을 어김없게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재무부는 16일 금융업무의 쇄신방안을 공표했다.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지금까지의 금융기관 대출업무가 불건전한 대출 성행과 이로 인한 대출기한 연장 상습화, 그리고 자금유용의 폐단 속에서 영위되어왔음을 뜻한다.
개발자금 수요의 과도한 금융전가, 이른바 「쪽지대출」의 압력, 금융외적 작용에 의한 무리한 자금공급 및 지보로 인한 대불발생 등 처음부터 부실의 요인을 내포한 채 대출이 강행되어온 결과 연체 대출액은 증가일로에 있으며 『돌아오지 않는 돈』때문에 예금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준 부족은 만성화된 상태에 머물러있다.
이러한 금융자금 공급의 혼란상은 비단 금융계에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가경제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자금이 목적 외로 흘러 토지투기를 조장하는가 하면 은행 창구로 회수되지 않은 유동성은 물가를 자극하고 부의 편재를 가져오기도 했다. 부실 대출은 먼저 악성 연체대출금의 누증을 유발했다.
69년 말 현재 시은을 포함한 13개 전 금융기관의 연체대출금은 총대출금 6천 1백 83억 2천 7백만원 중 6백 25억 8천 2백만원으로 10·l%라는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이는 동년 9월말의 총 대출액 5천 6백 24억원 중 연체액 3백 61억원, 비율 6·4%에 비해 3개월 동안 3·7「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연체액 중 고정 및 거액 연체액이 3백 3억 7천 7백만원으로 전 연체액의 48·5%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연체 대출액의 반이 『돌아오지 않는 돈』이 되어 시중 유동성으로 준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연체대출이라는 금융질서의 이단아는 곧 대출금 회전율을 둔화시켜 필요한 돈을 적기에 수요자에게 공급할 수 없게 한다. 5개 시은의 대출금 회전율이 66년 상반기의 5·5이후 68년 하반기에 4·5를 기록하고 69년 상반기에 4·3으로 최저수준을 보인 것은 그간의 대출금동향을 잘 설명해준다.
이처럼 무질서한 금융기관 대출업무를 개선하기 위해 재무부가 세운 방안은 지금까지의 폐해를 사전에 적극적으로 예방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있다.
그 주요골자는-
①금융기관 대출의 자율성 제고 ▲일반은행은 총 예금 증가액 중 지준을 뺀 35%를 기계공업자금을 제외한 개발금융재원으로 산은에 예치 (산은은 예치분에 대해 평균예금「코스트」를 연 18%선 이상으로 보장) ▲하향식 대출 지양 ▲대출은 은행장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한다.
②대출심사제도의 채택 ▲일정금액 (3천만원) 이상 대출신청은 대출 심사역을 거쳐 융자심의위를 통과해야한다. ▲융자심의위는 심의결과에 책임을 지며 대출 심사역은 사후관리방침을 결정.
③대출자금 유용방지 ▲대출약관에 유용방지조항을 삽입 ▲유용시는 대출금을 즉시 회수 ▲유용업체는 일정기간 금융지원을 중단.
④갚고 또 빌리기 운동전개 ▲당초 대출기한을 소요기간에 맞도록 하고 어음할인형식으로 전환하여 현재와 같이 3개월마다 어음 개서하는 폐단을 없앤다. ▲우량업체에 대한 「크레디트·라인」제실시 ▲연체자는 신규대출 억제 ▲상환기한 연장제한 ▲연체대출금리 연40%로 인상 (현재 대통령령으로 되어있는 최고 이자율 연 36·5%를 3월 20일까지 개정)
⑤상업어음의 활용촉진 ▲상업어음 재할업종을 현재의 14개에서 대폭확대 ▲각 은행의 상업어음 할인실적에 따라 일정한 비율에 대해 재할인을 허용하여 현재의 전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 3%를 30%로 높인다.
⑥책임경영자세의 확립 ▲70년 중 차등 배당제 실시여건을 마련하여 71∼72년부터 실시.
연초부터 금융질서를 바로잡자는 정부의 의도는 일단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금융 난맥상은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제반조치가 미비한데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은행의 경영권이 정부에 있고 은행경영자가 정부로부터 임명되는 오늘의 풍토에서는 정책 당국자의 양식이 올바른 금융풍토를 이끌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실기업 정비과정에서 노정된 것과 같이 무모한 차관도입과 이에 대한 지보은행, 계획차질에서 빚어지는 특혜금융의 무절제한 공급 등이 바로 금융의 추락을 가져왔다고도 볼 수 있다.
금융 외적작용의 거센 입김을 제거하는 정책 당국자의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화려한 방향제시는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시은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밝혀지기 전에 대불을 대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전해진다.
정부는 이번 정책 입안을 계기로 외채상환 적립금제에 의해 이러한 허점을 막고 기존 연체 대출금 정리계획을 세워 연체를 불식하겠다고 나서고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당국의 의욕이 과연 제대로 현실화 할 것인지 그 전개과정은 앞으로의 주목거리가 되고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