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가 차버린 2조3000억원의 투자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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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2조3000억원대의 대규모 신규 투자가 허공으로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작금의 저성장 구조를 탈피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돌파구는 뭐니뭐니 해도 기업의 투자뿐이다. 기업의 대규모 신규 투자야말로 국내 수요를 부추기는 마중물이자 일자리를 새로 만들 수 있는 첩경이다. 그런데 국회가 이런 절호의 기회를 외면하는 바람에 투자계획 자체가 무산될지 모르는 상황에 몰렸다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투자계획은 SK종합화학과 GS칼텍스 등이 일본 기업의 자금을 끌어와 모두 2조3100억원 규모의 새로운 화학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이 공동출자로 자회사를 만들면 당장 2조원이 넘는 대형공장설비의 건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설립할 경우에는 100% 지분을 보유토록 규정하고 있다. 일부 지분으로 기업 확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사업특성상 외국기업과의 공동출자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이 규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기업의 가공기술과 일본기업의 원료공급 능력을 합쳐 시너지를 내려면 공동으로 신규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공정거래법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는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1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이 문제를 대표적인 ‘손톱 밑 가시’ 규제로 보고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고치는 방식으로 예외를 적용해 주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막상 외국인 투자촉진법 개정안은 국회 산업위원회 법안소위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여야 간의 정쟁과 재벌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 속에 회기가 끝나 버린 것이다. 한 푼의 투자가 아쉬운 판에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어렵사리 끌어온 대규모 외국인 투자 기회를 무심하게 차버린 것이다. 정부는 9월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국회의 협조 없이는 공허한 얘기다. 국회가 시급한 경제 현안 입법을 외면한다면 하반기에도 경제는 살아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