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사 늘면서 모성·아동의료 이슈 제대로 다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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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마거릿 뭉헤레라 세계의사회 차기 회장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선출된 첫 여성 회장이다. 그는 “가난한 지역 출신의 여성 의사로서 국제 사회에서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의사라면 당연히 남성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30년 전만 해도 국내 여의사는 2000명도 안 됐다. 하지만 지난해 전국 여의사 수는 1만9000명을 넘어섰다. 의사 10명 중 2명꼴이다.

 올해 10월에는 우간다 출신 정신과 여의사인 마거릿 뭉헤레라(56)가 세계의사회(WMA) 회장에 오른다. 102개국 800만 명의 세계 의사들을 대표하는 자리다. 1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린 ‘세계여자의사회(MWIA)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난 뭉헤레라 차기 회장은 “한 명의 여성 리더만으로는 안 된다. 의료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수준만큼 여성들이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개회식에는 세계 40개 국에서 1100명의 여의사가 참석했다.

 - 세계 의료계에서 여성의 활동을 평가하자면.

 “의료계에 여성이 등장하면서 모성(母性)이나 아동의료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덕분에 최근 임신이나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여성 수가 1990년에 비해 절반까지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세계 여자아이의 날’도 제정됐다. 하지만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있는 여성은 아직 10% 수준밖에 안 된다.”

 - 한국은 출생아 대비 낙태율이 세계 1위다.

 “한국 여의사들이 이에 대해 더 활발히 연구하고, 뭉치고, 의견을 내야 한다. 여성만을 위한 모임이나 운동이 아직도 필요한 이유다.”

 뭉헤레라 회장은 ‘임계질량(크리티컬 매스)’이라는 물리학 용어를 꺼냈다.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양이라는 뜻이다. 그는 “한국에 여성 대통령이 나왔지만 여성 리더 혼자만으로는 안 된다. 중심 세력에 여성들이 일정 수 이상 들어가 ‘움직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 어느 정도가 돼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나.

 “여성 의료인력은 전체의 60% 정도까지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아동사망률 감소, 모성보건증진 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다.”

 - 여성으로서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나.

 “혹시 ‘PHD’라는 말을 들어봤나? Pull Her Down(여성 끌어내리기)라는 뜻이다. 사회는 여성이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 지난 30년간 쉬지 않고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지지해주는 배우자를 만나는 일이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남편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가인 남편과 결혼해 아들 1명을 두고 있다.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여의사회 국제학술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건 1989년 이후 두 번째다. 올해는 ‘임신과 낙태’ 등을 주제로 40여 개 세션과 초청 강연이 마련됐다. 대회 마지막날인 3일에는 박경아(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전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이 세계여자의사회(MWIA) 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글=김혜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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