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프라 최후의 순간|미 여의 데비다·테일러 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내가 「비아프라」에 간 것은 그곳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비아프라」를 꼭 떠나야만할 경우 철수하기전에 하루나 이틀만 더 그들을 급양하고 치료해주어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는 많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건질수 있었기에 나는 내가 할일이 없어질 때까지 「비아프라」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크게 변한 것은 사람들이 전쟁에 넌더리가 나 어떤 희생이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종전되어, 평화가 오기만 바라고 있는 점이었다.
그들은 하루에도 두차례나 당하는 폭격의 공포 및 긴장감과 계속되는 굶주림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연방군이 「아보」지방에서 일대 공세를 취해 이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비아프라」는 가장 비옥한 곡창지대를 잃게 됐으며 「비아프라」의 주식물인 「가리」값이 두배로 뛰어 모두들 전전긍긍했다.』
비행기는 우리 병원에서 불과 수백 피트 떨어진 지점에 기총소사를 했다.
이때처럼 시간이 더디 간적은 없었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급식을 하고 황혼이 되기를 기다렸지만 태양도 시침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비행기는 「미그」기와 큰 「제트」폭격기가 번갈아 나타났다.
날이 저물자 우리는 어린이와 중환상태에 있는 어린이를 트럭에 태웠는데 그중 2백명은 트럭까지 걸어갈 수 없는 어린이들이었다.
그날밤 우리는 「울틴」공항에 닿았다. 우리는 또다시 두시간이상 기다렸다. 마침내 「비아프라」의 DC7기가 세차례나 착륙을 시도한 끝에 내려앉았고 뒤이어 「상우토메」에 있는 기독교 합동구호반 소속 DC6기가 도착했다.
나는 DC6기에 달려가 비행기속으로 들어가자 승무원은 트랩의 사다리를 떼서 기내로 올려놓고 말았다. 나는 승무원에게 어린이들을 태워달라고 애걸했으나 그는 거절해버렸으며 나는 내리지도 못한채 비행기는 떠나고 말았다.
이 어린이들은 프랑스 의료반과 함께 「비아프라」에 남겨둔 채. 【AP】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