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거대 자본·최고 스태프 흥행의 충분조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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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이 현장에 가지 않고도 뉴욕 공연계의 핫이슈를 들여다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뮤지컬 칼럼니스트 조용신씨가 매주 브로드웨이 소식을 전합니다.

지금 브로드웨이에서는 지난달 25일 막을 내린 뮤지컬 '흡혈귀의 춤(Dance of the Vampires.사진)'을 두고 말들이 많다.

'흡혈귀의 춤'은 화려한 제작진으로 인해 개막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낳았다. 주인공에 '오페라의 유령'의 오리지널 유령이었던 전설적인 영국 배우 마이클 크로퍼드가 캐스팅됐고 음악은 에어 서플라이의 '메이킹 러브 아웃 오브 나싱 앳 올(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등을 작곡한 짐 스타인먼, 연출.안무는 '유린 타운'으로 지난해 토니상을 받은 존 랜도와 존 카라파 콤비, 장소는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시설이 좋다는 민스코프 극장이었다.

또 사상 최대의 거대한 세트를 지은 데다 이미 독일에서 흥행에 성공한 전례가 있어 뮤지컬은 막만 오르면 브로드웨이를 제패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으로 대참패였다. 공연은 불안하게 출발했다. 연출자의 모친상에다 세트 작동에 기술적 결함이 발견돼 개막일이 두주나 연기됐다.

공연 초반 흥행의 열쇠를 쥐고 있던 마이클 크로퍼드는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간데없이 촐랑대는 코믹 연기를 해 고정팬들을 실망시켰다. 단조로운 음악과 전자 음향의 과다한 사용이 가져온 소음 등으로 공연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여러 악재가 겹쳐 공연은 불과 두달여 만에 제작비 1천2백만달러(약 1백50억원)를 그대로 날리고 문을 닫았다.

최근 브로드웨이는 관객층이 한층 젊어진 데다 실험적인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다. 때문에 야심차게 준비한 '흡혈귀의 춤'의 흥행 참패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평론가들 사이에선 이 작품의 실패가 향후 브로드웨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한창이다.

공연 관계자들은 이번 일로 인해 큰 교훈을 얻었다. 바로 '최고의 스태프와 거대 자본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무조건 흥행과 연결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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