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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수퍼마켓'이 북적이게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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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마이클 리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

전 세계 거리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거리를 오가며 스마트폰으로 음악·드라마를 즐기고, 맛집을 검색한다. 10년 전만 해도 이동통신 수단에 머무르던 휴대전화는 이제 시대와 기술의 진보를 반영하며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스마트폰이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혜택을 입은 업종은 모바일 상거래 산업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태블릿 PC를 통해 쇼핑 정보를 얻고, 제품도 구매한다. 스마트폰 거래를 통해 소비자들은 직접 매장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물론, 온라인 거래를 위해 컴퓨터 전원을 켜는 일조차 생략할 수 있다.

 모바일 상거래의 가장 큰 장점인 다양한 정보 수집과 간편한 거래는 머지않아 금융 상품의 거래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운용업계의 오랜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개방형 온라인 펀드 판매 채널인 ‘펀드수퍼마켓’의 도입이 올해 하반기 들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수퍼마켓은 자산운용사가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판매사들을 거치지 않고 상품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다. 수퍼마켓이라는 단어 그대로 다양한 펀드를 한곳에 모아놓고 판매하는 일종의 온라인 펀드 쇼핑몰인 셈이다.

 기존의 펀드 판매 시스템하에서 투자자들은 은행·증권사 등 판매사를 통해야만 펀드 가입이 가능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일방적인 투자 정보와 권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판매사들은 수익 창출을 위해 계열 운용사의 펀드 판매에 주력했고, 투자자들은 공정한 투자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하지만 펀드수퍼마켓이 도입되면 모든 상품이 펀드수퍼마켓 전용 클래스로 판매될 계획이어서 투자자들은 보다 쉽게 다양한 회사의 펀드들을 직접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펀드수퍼마켓에서는 판매사라는 중간 채널이 사라지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판매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금융위원회는 투자자들의 펀드 가입 비용을 낮추고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취지로 ‘온라인펀드 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온라인에서의 펀드 판매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온라인 전용 펀드 잔액은 2012년 말 기준 1조8480억원으로 전체 공모펀드의 1.4%에 불과하다. 주요 원인은 판매사들이 온라인 펀드 판매 동참에 소극적이었고 운용사들 역시 판매사와의 관계 등으로 온라인 펀드의 홍보 및 정보 제공 등을 충분히 하지 못했던 데 있다. 이렇게 온라인 펀드가 외면당한 전례 때문에 펀드수퍼마켓의 출범 전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우선 모바일 기기들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금융거래가 훨씬 활발하다. 한국은 이미 HTS나 MTS를 통한 주식이나 ETF·ELW 등의 거래 비중이 전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 당국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시행된 ‘계열사 펀드 판매 50% 제한’에 이어 펀드 활성화를 위해 영국의 IFA와 유사한 독립투자자문사 도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러한 당국의 추진력을 신뢰하고 점차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는 은행 같은 오프라인 판매사를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 금융시장에서, 펀드수퍼마켓 도입이 침체되어 있는 펀드시장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기 위한 반전의 계기가 될 잠재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펀드수퍼마켓이 진정한 성공을 거두려면 투자자들의 많은 참여가 수반되어야 한다.

온라인 펀드가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유 중에는 투자자들이 펀드나 투자상품에 대해 이해하고 스스로 투자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던 부분이 가장 크다. 펀드수퍼마켓이 동일한 문제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판매사의 도움 없이도 자유롭게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업계 차원의 투자자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막 도움닫기를 시작한 펀드수퍼마켓이 많은 난관을 뛰어넘어 펀드업계 제2의 전성기를 여는 발판이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마이클 리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