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노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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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동청은 9일 전국 각 기업체의 체불노임을 추석 전에 일소하기 의하여 전국각시·도 지사에게 노임체불업체를 조사하여 강력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 노동청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달 20일 현재 전국 6천여 사업체중 주요체불업체만도 35개소에 달하여 체불액도 3억원에 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총2만2천52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에서도 가장 많은 체불이 있는 업체는 대한석공이며, 다음이 내외방직을 비롯한 방직업체, 그리고 운수업자가 그 뒤를 잇고 있다한다.
추석이나 구정명절이 다가오면 노동청은 연중행사처럼 체불노임의 지불을 독촉하고 있는데 사실상 그 효과는 별반 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이유는 광공업자나 방직업자·운수업자 등 체임상습자들의 전근대적인 고용의식과 무성의뿐만 아니라 나아가 근로기준법에 규정되어 있는 벌칙이 너무나 약하고, 또 노동청이 자랑하는「강력한 행정조치」조차 보잘것없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일부 고용주 중에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노사의식이 지배되고 있는 것 같다.최근에 일어난 수다한 노사분규의 원인이 근로자의 권리주장을 마치 신분적인 주종관계에의 반역으로 취급하고, 고용해 준 것만으로도 크나큰 은덕을 업히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고용주의 낡은 의식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많은 산업예비군 때문에 정당한 권리행사조차 못하는 노조원들의 실력행사에는 직장폐쇄로써 대응하는 관례가 생겼고, 수출촉진을 위하여 노동청조차도 고용주를 옹호하는 태도로 임해 온 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인상이다.
그러나 생계비에도 미달하는 노임을 받고 있는 근로자로서는 직장을 가진 반가움보다도 우선 생계비는 받아야 하겠기에 노임을 생계비 선까지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물가지수보다도 상승한다고 하여 이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수출증대라는 지상목적을 위하여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그것도 모자라 노임체불까지 일삼고있는 것은 노동력의 확대재생산을 불가능하게 하는 소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광공업부문이나 방직부문이며 운수업 부문의 기업가의 고충을 모르는바 아니나, 피고용자들도 처자식을 거느리고있고, 명절에 입을 옷과 먹을 음식을 고대하고 있는 어린 자녀들이 있음을 명심하여, 「보너스」는 주지 못할망정 밀린 노임이라도 완전히 지불하여 그들에게 명절의 기쁨을 안겨주는 고용주의 아량이 더욱더 기대된다.
노동청은 이즈음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노사분규의 원인이 노동청의 감독이나 지도불충분에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좀더 노사협조에의 길을 트는데 전력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이를 위하여서도 근로기준법에 규정되어있는 최저임금을 명령으로 정하여야 할 것이다. 또 임금지불 방법을 규정하고 있는 제36조의 월1회 이상의 정기 임금지불을 강제하여야 할 것인바, 현행 1만원 이하의 벌금으로는 강제하기 어려우니 벌칙을 보다 강화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또 노동청은 근로감독관을 각 사업장에 파견하여 체불임금이 평상시에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한 감독을 하여 근로자의 권익을 옹호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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