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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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생각하다 지친다는 표현이 있다. 더이상 궁리할 여지가 없을만큼, 골몰히 생각했다고 말하는때도 있다.
이렇게보면 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사람의 사고의 능력에는 한도가 없는법이다.
미국의 어느 학자가 밝힌바에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두뇌나 정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9%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있다한다. 그러니까 두뇌를 너무써서 탈이나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말을한다는 것에는 한도가 있기 마련이다. 말재주만이 아니라 「스태미너」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우리는 육식주의자인 미국인을 도저히 이겨내지못한다.
기록을 좋아하는 미국인은 몇년전인가 요설대회를 가진 일이있다. 이때 90시간이상을 쉬지않고 떠들어댄 사나이가 있었다.
그러나 점잖은 의사당안에서도 요설대회가 벌어지는 일이 가끔있다. 이것을 두고 「필리버스터」(filibuster)라고 한다.
「필리버스터」란 원래는 화란의 해적이나 모험가들을 뜻했었다. 그것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특히 「멕시코」 전쟁이 끝난 다음에 중미에서 각종 혁명에 참가하는 미국인 모험가들을 가리키게되었다.
그러나 이제 이말은 주로 의사방해, 즉 국회에서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정치용어가 되어 버렸다.
「필리버스터」가 날뛰던 18세기 영국의 하원 제쳐놓는다면 현재까지의 기록보지자는 「사우드·캐롤라이나」 주출신 민주당상원의원「스트롱·서몬트」다.
그는 1957년 8월 28일부터 29일에 걸쳐 24시19분의 최장시간 연설기록을 세웠다. 이밖에도 「웨인·모스」하원의원이 53년 4월 24일∼25일에 세운 22시간26분이란 기록도 있다.
여기에 비긴다면 우리4대국회때 유옥우의원이 세운 7시간이란 기록은 차라리 빈약한것이었다. 「필리버스터」란 의회안에서의 소수파의 가장 효과적인 대항책이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다수파의 횡포에대한 소수파의 가장 효과적인 저항가법이 될 수도있고, 또는 소수파의 횡포가 될수도있다.
국민투표법안심의를 에워싸고 법사위에서 박영천의원이벌인 10시간의 「필리버스터」로써 이제 그기록이 깨어졌다. 우리네 「스테미너」도 그만큼 늘었다고 자랑할것은 못된다. 병적인 정치적풍토가 「필리버스터」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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