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에 조각 난 캔버스 … 갈기갈기 찢긴 마음 읽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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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발 포탄을 맞아 갈기갈기 찢어진 캔버스를 수습해 꿰매고 색을 입혀 한반도의 피울음으로 되살린 김아타씨. 2년에 걸쳐 400여 점의 캔버스를 사격장에 내건 김씨는 이 포탄 드로잉을 ?한국 현대사의 거울?이라고 불렀다. [파주=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년. 포성은 멈췄지만 한반도의 긴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돼버린 남과 북의 대치상황을 미술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일상화된 정전(停戰)에 둔감해진 우리 의식을 깨우는 캔버스가 여기 있다.

“귀마개 했나?”

 통제관이 질문하자 사병들이 고함친다. “예엣.”

 “준비 됐나? 발사!”

 “하나, 둘, 셋, 발사!”

 “떵~~떠떵~~~~”

 눈앞이 번쩍하더니 고막을 찢는 듯 굉음이 땅을 울린다. 뇌가 흔들리고 내장이 뒤집히고 전신이 떨린다. 지난달 27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사격장. 한 달에 두 번 있는 대전차포 사격 훈련에 민간인 몇 명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티스트 김아타(57)씨와 조수들이 사진기를 조정하며 800m 너머 포가 떨어진 산등성이를 기록한다. 아침 일찍 3m 폭에 15m 길이 대형 캔버스를 설치한 뒤 그 곳을 조준한 포가 낸 결과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망원경으로 보니 캔버스는 이미 너덜난 상태다. 40발 넘게 맞은 그 캔버스는 거두어져 ‘드로잉 오브 네이처(Drawing of Nature)’ 시리즈의 하나로 발표된다. 해당 시리즈의 작업과정 일부는 김씨의 홈페이지(www.attakim.com)에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작업이죠. 지난 2년여 400여 장 캔버스를 사격장에 내걸었는데 갈기갈기 찢긴 그것들이 우리 땅, 우리 마음을 대변하듯 제게 말을 걸어와요.”

 9일 경기도 파주 작업실에서 김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한반도의 상흔을 품은 작품 앞에서 “자연을 향해 발사되는 수십 발의 포탄은 결국 우리 가슴으로 날아오는 전쟁의 예고와도 같다”고 말했다.

 조각난 캔버스의 파편을 기우고, 땜질하고, 이어가며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작가에겐 명상과 수련의 시간이었다. 작업실에 쌓인 40여 점 ‘포탄’ 드로잉은 그가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거울이다. 그는 “캔버스에 뭔가 그려서 일궈온 서양미술사의 완강한 틀을 이 ‘드로잉 오브 네이처’로 깨고 싶다”고 했다.

 한국전쟁에 대한 국민들 관심이 한없이 멀어져 가는 이 때, 화가들은 오히려 더 전쟁을 기억하려 하고 새롭게 그린다. 정권 교체기마다 부각되는 남북 문제의 난감한 현실 앞에서 예술가의 고민이 더 깊어지기 때문일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계곡에 들어선 서용선(62)씨 화실은 때로 해방공간으로, 때로 전쟁터로 변한다. 높디높은 천정 바로 밑까지 짜 넣은 거대한 캔버스는 역사의 구석구석을 살펴 단 한 점 놓치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가’로부터 정전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역사의 또 다른 현장이다.

 지난 6월 25일 개막한 ‘기억·재현 서용선과 6·25’(8월 25일까지 서울 안암동 고려대박물관) 전시에서 작가는 홀로 되새김하고 싸워온 화실의 전쟁 기억을 임진강물처럼 풀어놓았다.

 포츠담 회담, 노근리 사건, 함흥학살, 인천상륙, 빨치산, 흥남철수, 피난, 희생, 포로, 상이군인, 휴전선…. 벽면에서 꿈틀거리는 그림들은 반전(反戰)을 부추기거나 강대국의 횡포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오래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거친 붓질 속에 왜곡된 몸뚱이들, 빨강·노랑·파랑의 원색으로 강렬한 색면, 인간의 부조리함을 대변하는 의도적인 어설픈 붓질이 전쟁의 뜻을 숙고하게 만든다.

 정전 상태에서 멈추어버린 전쟁의 업보를 작가는 강력한 평면 회화의 힘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놓았다. 같이 전쟁을 겪어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우리 마음을 이야기하자고.

 서씨는 “국가나 민족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자유의 본질을 본다”고 했다. 그의 역사화(History Painting)는 ‘제발 전쟁을 느끼라’고 말한다.

 전쟁이 멈추어선 곳이라는데 평화는 왜 이리 아득하게 보이는가. ‘북핵(北核)’은 날로 추상화돼 가고,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신보다 주변 강대국에 좌우되는 현실이다. 민족 전체의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협상 테이블이 거래와 비즈니스로 설왕설래하는 걸 건너다보며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붓을 드는 것뿐이다. 붓이 총보다 강하기를 빌며.

 화가 김혜련(49)씨는 여성 화가로서 흙이 내지르는 소리를 듣는다. 아주 오래 전, 한반도에 뿌리를 내렸던 이 민족의 한숨을 새긴다. 그가 이 땅이 들려주는 소리에 최초로 접신한 곳은 제주도였다. “한라산이 육지 사람들에게 보내는, 외로움과 강인함, 원통함과 풍요로움, 온기와 냉기를 품은 편지”라 부른 ‘볼케이노’ 연작이 유배와 항쟁을 겪은 거기서 태어났다.

 김씨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작업실을 열면서 집에서 멀지 않은 비무장지대, 임진강과 문산의 여러 유적에 눈 돌렸다. 피 흘리는 철조망의 풍경이 가슴에 사무쳤다. 유학 시절, 그가 머물렀던 독일 베를린 통일의 순간, 무너지던 철조망이 겹쳤다.

 『김혜련-분단의 풍경』(열화당 펴냄)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문학적으로 푼 그림 시(詩)다. “예술가란 피할 길 없는 존재의 두려움을 직시하는 존재”이기에 그는 모성(母性)의 품으로 한국전쟁의 기억을 껴안는다.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강물 저 편을 짓이기는 철조망을 묘사하며 작가는 쓴다. “일제강점기를 청산하지 못한 후유증인 분단, 20세기의 고통 (…) 아름다운 풍경들 속을 가로지르는 상처, 그것을 꿰매는 작업들이 통증을 느꼈던 섬의 풍경들이다.”

 김씨는 남과 북 사이에 놓인 섬 풍경을 지켜본다. 60년이 지났다. 풍경은 변함이 없다. 이렇듯 화가들은 그리고 또 그린다. 그들의 역사보기는 그치지 않는다. 섬을 이어줄 징검다리로 그림들이 남는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아타

1956년 경남 거제 출생. 사진수업 뒤 ‘뮤지엄’ ‘온 에어(On Air)’ 프로젝트, ‘인달라’ 연작 발표하고 ‘드로잉 오브 네이처’ 작업 중.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에서 아시아작가 최초로 개인전.

서용선 작, ‘흥남 철수’, 캔버스에 아크릴, 300×500㎝, 2013. [그림 고려대박물관]

■서용선

195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뒤 신화시대 인물로부터 조선, 근·현대를 거쳐 어제와 오늘을 잇는 역사화와 군상화에 집중.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김혜련 작, ‘’DMZ 2009’ 중 ’20-철조망’, 캔버스에 유채, 150×200㎝, 2009. [그림 열화당]

■김혜련

1964년 경남 창원 생. 서울대 독어독문학 전공 뒤 독일 베를린에서 회화실기 석사와 철학박사 학위 취득. 일상의 사물을 자신의 마음과 체험을 통과시켜 공감의 풍경화로 상승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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