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수도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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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밖에서 물통소리가 요란해진다. 물장수가 왔나보다. 한짐에 40원씩하는 물을 그나마 서로 먼저 받으려고 부녀자들은 서로 아귀다툼을 하느라고 왁자지껄하다. 이 때문에 평화스럽고 다정하기만했던 이웃들간에 금이가고 마주보고도 서로 말을 하지않는 어색한 사이가 되기도한다.
종암동에 이사온지도 3년. 여름이 오면 찌는듯한 삼복무더위에도 찬물목욕은 제쳐놓고서도 마음놓고 등물하기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조롱조롱 개구장이들만 있는 우리 가정에서는 무엇보다 아쉬운 것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도물이다.
세살싸리 막내는 잠시 밖에만 나갔다오면 흙투성이다. 이럴때면 땀방울이 온몸에 솟은 자신을 돌보기에 앞서 아이들부터 씻겨주어야 겠다는 마음이 앞서기 일쑤다.
이곳주민들은 물에대한 그리움같은 미진한 그무엇을 항상느끼면서 살아간다. 밤 늦게서야 조금씩 나오는 수도물을 받느라고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어쩌다가 물이많이 나오는 날이면 며칠간 모아두었던 빨래며 집안소제와 물독에 물을 받아놓느라고 밤을 거의 지새울때도 있다.
수면부족때문에 늦잠을자다가 아빠와 아이들 학교준비에 늦어당황하는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두달전이다. 참다 못해 동네 부인들과 상의한끝에 소위 「특선」이라는걸 놓는다고 5급공무원 박봉을뜯어 큰마음먹고 지출을 감행했다. 처음 한달은 그 특선의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밀렸던 잠도 실컷잘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또다시 감감무소식이다. 그러고보면 정말 본전생각이 나지않을 도리가 없다.
종암동이 그다지 변두리 지역도 아니고, 신문에 나도는 갈증지역도 아닌것 같은데 이처럼대서울시민으로서 누릴수 있는 조그마한 혜택까지 받지 못한대서야 너무 서럽지 않은가? 서운함이라기 보다 그 누구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앞선다.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더 심해질 우리의 짜증과 갈망을 해소해줄 방법은 정말 없을까고 곰곰 생각해본다.
한혜수 <서울종암동·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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