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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대학촌의 몰락 … 주민 빼고 다 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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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학생들이 떠난 고령 가야대 인근의 한 원룸촌에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다. 가야대가 경남 김해로 이전하면서 학생들이 떠나고 대부분의 원룸은 비어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1993년 3월 인구 3만5000명의 경북 고령군에 4년제 가야대학교가 들어섰다. 경북대·영남대처럼 학사학위를 주는 번듯한 대학이 고령군, 그것도 고령읍 지산3리 외딴 마을에 개교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가야대는 당시 학부생이 200명뿐인 신생 대학(58만2000㎡)이었지만 붉은색 벽돌로 멋을 낸 캠퍼스는 고령군민의 자랑거리였다. 대학이 들어선 큰골(36만㎡)에는 원룸과 상가가 생겨나기 시작해 30여 곳에 이르렀다. 학생들과 밀접한 당구장과 PC방·서점·주점도 잇따라 문을 열었다. 대도시 대학 앞에 조성되는 화려한 대학촌이 시골 마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대학촌은 또 한번 탈바꿈했다. 이달 5일 찾은 경북 고령군 가야대 대학촌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화려함은커녕 찢어지거나 색이 바랜 ‘임대’라고 쓰인 현수막과 ‘PC방’ 등 때묻은 간판만이 이곳이 대학촌이었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200m쯤 걸어 들어가자 굳게 잠긴 녹슨 학교 후문이 눈에 띄었다. 철문 옆 벽에는 ‘동아리 모집’ ‘하숙집’ 등의 글자 대신 ‘바보’ 등의 낙서만 쓰여 있었다. 대부분의 원룸과 상가는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일부 문이 열린 원룸과 상가 복도에도 버려진 가구와 생활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주민 김모(63·고령읍 지산리)씨는 “보다시피 시골 대학촌은 아쉽게도 폐허처럼 돼버렸다. 찾는 사람도 많지 않다”며 “마을 입구 쪽 일부 상가와 원룸만이 인근 공장 근로자를 상대로 영업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 상가는 지역 시민단체에서 빌려 활용 중이었다. 이를 보여 주듯 대학촌에서 비교적 깨끗한 원룸의 월세는 10만원 정도다.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20만원 이상 받을 수 있었다. 이마저도 들어올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고령군의 한 공무원은 “주민들 사이에 대학촌은 우범지대로 불린다. 인적이 거의 없어 불량 청소년이 드나들고 건물 쇠붙이를 뜯어가는 도둑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시골 대학촌의 몰락은 가야대가 2004년을 기점으로 경남 김해로 옮겨가면서 시작됐다. 가야대는 서울·경기·부산·대구 등 외지 학생을 모집해 2003년까지 770명 규모로 몸집을 키웠었다. 그래서 경남 김해에 김해캠퍼스까지 별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대학이 생겨나면서 2004년부터 고령에선 신입생을 많이 모집하지 못했다. 큰골 대학촌은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가야대 최종호 사무처 직원은 “고령에선 신입생을 거의 모집할 수 없었지만 김해에선 신입생 모집이 가능했다. 학교를 옮겨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매년 신입생이 줄어들자 2012년 가야대는 60여 명의 자율전공학부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김해로 학교의 모든 기능을 완전히 옮겨갔다.

 고령에 있는 가야대는 현재 텅 비어 있다. 대학 측은 대학 부지에 9홀짜리 유료 골프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내년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령군 관계자는 “대학촌 일대가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군청이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그러나 골프장이 생긴 뒤 상권 활성화를 기대하며 가로등을 더 설치하고 도로를 넓히는 등 정비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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