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혼자 56회 폭풍 클릭 … 황당한 올스타 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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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올스타 팀을 상대해 즐거웠다.” 박찬호(40·은퇴)는 한화에서 뛰었던 지난해 7월 13일 부산 롯데전 등판(5이닝 1실점)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2012 올스타 팬투표 결과 롯데 선수들이 10개 포지션을 모두 휩쓸었기 때문이다. 롯데가 곧 이스턴리그(동군) 올스타 팀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총 19년을 뛴 박찬호에겐 아주 낯선 상황이었다.

 2013년 올스타 투표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LG가 웨스턴리그(서군) 11개 포지션(구원투수 부문 추가)을 싹쓸이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8일 발표한 올스타 투표 결과 양 리그 최다 득표(117만4593명·구원투수)를 기록한 봉중근을 비롯해 웨스턴리그 선수 명단은 LG 선수들로만 꽉 찼다. KIA·넥센·한화·NC에선 팬 투표 1위가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오는 10일 감독 추천선수 12명이 추가로 발표되지만 그들은 경기 후반에야 뛸 수 있다.

 ◆LG의 신바람, 11개 독식=지난 10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LG는 8일 현재 3위(39승31패)에 올랐다. 신이 난 팬들은 LG 선수들을 올스타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클릭’을 했다. LG 선수 5명이 100만 표 이상을 얻었다. 종전 최다 득표 기록은 89만2727표(2012년 롯데 강민호)였다.

 LG의 팀 성적이 좋은 만큼 선수 개인 성적도 대체로 좋다. 또 성적이 뛰어나지 않아도 포지션별 경쟁에서 우위를 보인 선수들이 몇몇 있다. 그러나 기록이 상당히 뒤지는데도 LG 팬들의 맹목적인 사랑으로 올스타가 된 선수도 있다. 넥센 1루수 박병호는 16홈런(공동 1위)·60타점(1위)을 기록하고도 LG 김용의(2홈런·22타점)에게 밀렸다. 넥센 유격수 강정호(11홈런·55타점)는 LG 오지환(6홈런·23타점)에 미치지 못했다. KIA 양현종은 9승(공동 1위)·평균자책점 2.30(1위)으로 활약했지만 외국인 리즈(5승·3.20)에게 졌다.

 지난해만큼은 아니어도 롯데 팬들의 입김은 여전히 셌다. 롯데 유격수 신본기가 삼성 김상수를 이긴 것, 타율 0.167를 기록한 뒤 2군으로 내려간 롯데 김대우가 지명타자 1위를 차지한 건 지나쳤다는 의견이 많다.

 ◆1인 최대 56표가 문제=올스타 투표에서 팬들은 1일 1회씩 투표할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나눠서 투표가 가능해 투표기간(6월 10일~7월 7일) 28일 동안 한 사람이 최대 56표를 던질 수 있다. 한국은 2011년 이후 3년째 온라인 투표만 진행하고 있다.

 폐쇄적이고 반복적인 투표방식은 소수의 극성이 보편적인 상식을 이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것,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현장 투표와 인터넷 투표를 병행하고 있다. 인터넷에선 한 사람이 최대 25번까지 표를 던질 수 있다. 일본은 80% 이상이 오프라인 투표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한국처럼 특정 팀 쏠림 현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19일 포항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나서지 못한 일부 선수는 팬 투표 결과에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몇몇 선수는 올스타가 되고도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이런 불합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투표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 올스타전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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