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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택 안 하겠다 … 여성옷 거품 빼기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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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만난 패션전문업체 인동FN의 장기권 대표는 “가격 거품은 확 빼고 품질은 높여 소비자에게 가격 대비 최상의 가치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국내 패션시장은 급속도로 해외 대형 SPA브랜드와 소수의 유명 국내 브랜드로 양극화되고 있다. 인동에프앤(FN) 장기권(56) 대표는 “15년 전부터 내셔널(국내) 브랜드가 무너지기 시작한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인동FN은 ‘쉬즈미스(She’s Miss)’와 ‘리스트(List)’ 두 개 브랜드로 사세를 급속히 키워 가고 있다. 쉬즈미스는 몇 년째 백화점에서 30대 직장 여성을 대상으로 한 ‘커리어캐릭터’ 부문 판매 1위다. 2년 전만 해도 80곳에 불과했던 인동FN 매장 수는 올해 230개(백화점 60개 포함)로 불어났고, 매출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1662억원이었다. 올해 목표는 2600억원이다.

 이런 인동FN을 이끌고 있는 장 대표가 올 봄여름 시즌 제품부터 “앞으로 업택(Up-Tag)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업택이란 표시 가격을 높게 써놓고 할인을 많이 하는 가격 정책으로, 그간 여성의류 업계의 고질적 병폐로 꼽혀왔다. 가격을 애초에 낮추는 대신 세일을 없애겠다는 얘기다. 장 대표는 또한 “매 시즌 트렌치코트·재킷·원피스 등 인기 품목 15~30개를 정해 ‘이슈 아이템’이란 이름으로 경쟁 브랜드보다 상시 50% 이하의 가격으로 파는 초저가 제품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백화점 브랜드로는 드물게 로드숍(가두점) 시장에 진출한다. 장 대표는 “현재 아웃렛·백화점 등 230곳인 매장을 2년 안에 전국 500곳으로 늘릴 예정”이라며 “로드숍이 이 중 120곳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 대표가 이런 전략을 도입한 배경에는 치밀한 시장 분석이 있다. 장 대표는 “고객은 점점 똑똑해지는데 국내 패션업계만 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패션시장에서 내셔널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해외 명품을 쫓아가서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백화점 수수료가 높은 국내 유통 환경에서 가격을 맞추려면 ‘볼륨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장 대표는 “소비자에게 가격 대비 최상의 가치를 주려면 고가 소량 전략을 펴는 해외 명품과는 달리 덩치를 키워야 한다”며 “그래야 단가를 저렴하게 책정하면서도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업택 배격과 로드숍 진출은 8년 전부터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믿을 만한 해외 공장을 찾고, 국내 디자이너와 현지 공장의 유기적인 연결 시스템을 구축해 품질을 높이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덕에 트렌치코트와 재킷·패딩코트 등 아우터(겉에 입는 옷)에선 가격 대비 최고의 품질 수준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우터는 특히 어깨선과 허리 등이 잘 맞아야 해 해외 SPA 브랜드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만족도가 낮은 분야다.

 성일물산 영업팀장, 한성실업 영업총괄이사 등을 거치면서 자신이 인기를 끄는 여성의류를 발굴하는 데 소질이 있다고 판단한 장 대표는 33세 때인 1990년 인동FN의 전신인 인동물산을 창업했다. ‘아다인’ 등의 브랜드로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로 98년 봄 자금이 묶여 부도 위기를 맞았다. 이때 회사를 구해준 것이 중국에서 생산한 10만원대 여성용 ‘원버튼 슈트’였다. 장 대표는 “외환위기로 소비가 극도로 위축됐을 때 백화점에서 하루 500만원어치가 팔려나갔다”며 “소싱(구매)과 가격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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