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헤게모니 기업' 투자했더니 … 상반기 최고 23.7% 수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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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성진 다원투자자문 대표

플러스 수익률은 언감생심. 난다 긴다 하는 투자자문사도 그저 손실 줄이기에 전전긍긍했던 올 상반기였다. 그만큼 국내 주식시장이 안 좋았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울 때도 남다른 아이디어로 눈에 띄는 성적을 내는 자문사·운용사가 있는 법. 올 상반기에는 다원투자자문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 회사가 하이투자증권을 통해 판매하는 랩어카운트 ‘하이-다원투자자문 랩’은 상반기에 23.7%의 수익을 올렸다. ‘하이-BEST다원 랩’ 역시 같은 기간 수익률이 22.2%에 이른다. 코스피지수가 6.7% 하락하는 동안 올린 성적이다. 두 상품은 모두 다원투자자문이 알아서 운용을 하는 일임형 랩이다.

 다원 손만승(34) 주식운용팀장은 “‘다원만의 사이클릭·헤게모니 투자 방식’이 약세장에서도 호성적을 낸 비결”이라고 밝혔다. 사이클릭 투자란 경기 국면을 판단해 그때 랠리를 벌일 업종의 주식을 고르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식은 이렇다. 다원은 경기 국면을 세 가지로 나눈다. 정부가 정책을 들고 나서는 경기부양 사이클, 정책이 먹혀 활기가 돌겠다는 판단에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설비투자 사이클, 그리고 실제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소비 사이클이다. 경기부양 때는 금융·건설이, 설비투자 때는 기계·소재가, 소비 사이클에는 소비재 주가가 많이 오른다. 다원은 각종 지표를 분석해 올 상반기를 ‘소비 사이클이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보기술(IT), 음식료, 미디어콘텐트 같은 소비 업종에 주목했다. 올 상반기에는 그게 1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다음은 택한 업종 내에서 종목을 고를 차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느냐’다. 다시 말해 ‘시장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가’를 살핀다. 이런 기업은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기록해 주가가 치솟는 경우가 많다. 물론 헤게모니를 쥐었다는 게 알려질 대로 알려져 주가가 한참 뛴 기업은 예외다. 요약하자면 ‘숨은 헤게모니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원은 중소형주에 많이 투자한다.

 올 5월까지는 이런 사이클릭·헤게모니 투자를 통해 수익을 쌓아갔다. 그러다 5월 중순에 다른 결정을 내렸다. 주식을 많이 처분하고 현금 비중을 30% 넘게 늘렸다. 주식 시장에 충격파가 올 것이란 예감에서다. 손 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미국 주식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했다. 6개월 이상 지칠 줄 모르고 올랐다. 각종 그래프를 분석해도 과열 신호가 뚜렷했다. 미국이 조정을 받으면 한국이 속한 신흥시장은 요동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5%가 안 되던 현금 비중을 확 늘렸다.”

 다원투자자문의 랩은 또 하나 특징이 있다. 2000만~3000만원 정도 소액투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다원투자자문은 대신·SK증권 등을 거친 박성진(44) 대표가 2009년 설립했다. 설립 초기엔 회사 규모를 키우기 위해 뛰어다니며 기관투자가들을 끌어 모았다. 박 대표는 “어느 순간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자문사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투자와 운용을 해야 하는데 기관 자금으로는 그게 힘들더라. 이런 식으로 운용을 하라는 기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어서…. 게다가 시장이 안 좋을 때 기관이 자금을 빼는 바람에 휘청한 뒤에는 마음을 바꿨다. ‘우리를 믿고 맡기는 돈만 받자’고.”

 이런 식으로 돈을 받다 보니 회사 규모는 아직 크지 않다. 현재 운용하는 자금이 총 300억원 정도다. 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 돈이 1년에 1억원씩만 더 들어온다고 해도 상관 없다. 우리를 신뢰하는 고객, 그래서 다원의 원칙과 소신대로 운용을 수 있도록 맡기는 고객 돈 위주로 받고 싶다. 그래야 고객의 자산을 늘리기 위해 우리 나름의 방법대로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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